춘자가 총에 맞을 때 그녀는 TV 쇼를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매춘부이자 급진적 페미니스트 작가인 솔라니스가 그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이유는 손에 쥔 아이스크림이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1968년 6월, 50℃가 넘는 폭염이 북아메리카를 덮쳤다 어제 총알이 위장을 관통할 때 춘자는 애인과 함께 팝콘을 씹으며 TV 쇼를 보고 있었다 솔라니스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춘자에게 다가가 세 발의 총알을 발사하는 장면이 나오자 그녀는 갑자기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귀여운 힛 걸은 어디 갔지? 그녀는 채널을 돌리면서 자신을 쏜 리볼버를 국립미술관에 처박아둘 궁리를 한다 며칠 뒤 솔라니스가 총을 쏠 때 춘자는 TV 쇼에서 캠벨 수프 캔이 얼마나 비싼지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녀가 바닥에 고꾸라지자 앤디는 카메라맨들에게 가까이 가서 죽어가는 얼굴을 클로즈업하라고 지시한다*
* 앤디 워홀은 1968년 6월, 급진적 페미니스트 작가인 발레리 솔라니스에게 저격당한다
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문예중앙 2018
[以後, 시작노트] 이 시에 춘자, 를 등장시킨 이유는 없다. 물론 등장시켜야 할 필연성도 없다. 하지만 이제부터 '춘자'는 집요하게 등장하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게 된다.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른바 심연으로서. 하지만 나는 춘자를 설계하지 않았다. 춘자는 산책길에 마주친 풍뎅이처럼, 갑자기 그 목소리를 드러냈고 나를 불렀을 뿐이다. 사정은 이렇다. 시집 발간을 결정하면서 그동안 발표했던 혹은 발표를 미뤘던 작품들을 모으고, 그동안 나를 관통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 몹쓸 '기획'을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 시는 스펙트럼이 워낙 넓고 파란만장한지 일정한 주제로 모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연대기 순으로 묶을 수는 없다. (어제 시작노트에 적은 것처럼) 어느 날 욕조에 더운 물을 받고 들어가 있었는데, 물 속에서 희미한 에탄올 냄새가 났다. 그 불편한 냄새 속에서 나는, 모두 같은 이름과 같은 가면을 쓰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사는 것이 지겹지 않을까. 귀찮고, 지겹고, 나른한, 오후 3시의, 단 한 명의 관객만 지켜보는,외롭고 웃긴 무대와 같은. 만일 이 삶을 복사하여 저 삶으로 옮겨도 도무지 구분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편집증적 히스테리 상태에서 춘자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솔라니스가 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어요!"라고 다급히 말한다. 솔라니스는 엔디 워홀을 저격한 페미니스트. 팝 아트에 심취했던 춘자는, 딱딱하게 말라버린 오렌지처럼 TV가 켜져 있는 거실 바닥을 고통스럽게 굴러다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