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의 허기

by 박성현






죽은 자들의 허기


박성현




춘자를 만났을 때 그녀는 15년 전의 빵 한 조각을 기억해낸다 말라버린 햇볕에 감춰진 잘 익은 오렌지색이었어요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죠 광장을 빠르게 가로지르던 사이렌과 날 선 비명이 고딕체의 비탈에서 출렁거리고 재스민 차는 여전히 향기로웠어요


완벽한 연극이란

배우 없는 순수한 연기가 아닐까요


죽은 자들의

허기처럼


그녀는 반쯤 비어버린 혓바닥을 꺼낸다 거대한 녹나무 이파리 속으로 빨려드는 바람소리와 이미 부서져버린 진흙 인형을 흉내 낸다 마른다는 것은 누군가의 몰입으로 기울어진다는 말이에요


내 심장은

밤의 다른 소리를 듣기 위해

더디게 진동하죠


15년 전에도 춘자는 빵을 씹고 있었다 아스팔트 위의 버려진 오렌지처럼 천천히 무너지는 옛날의 노래 표정을 가린 두 시간 전의 골목과 느닷없이 튀어나온 개 한 마리가 어둠을 향해 짖고 있는, 저 가파른 비대칭에서 그녀는


기억을 몇 겹으로 감싼다

아주 멀리서 분명한 웃음이 걸어온다







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문예중앙 2018








[以後, 시작노트] '죽은 자들의 허기'라는 문구가 내내 불편했다. 죽음은 허기를 몰아냈을 때 완성되는데, 만일 죽은 자들이 허기를 느낀다면, 그들의 '죽음'은 삶과 여전히 투쟁 중이거나 혹은 삶의 막중한 중압에 패배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 죽은 자에게 허기가 가능하다면, 그 순간 죽음은 중지된다. 허기는 실존하는 것들의 필연적인 순환이고 무(無)에서 유(有)로의 끊임없는 되돌아-가기이며 무엇보다 시간의 불가해한 흐름(혹은 지속)이다. 허기는 존재가 타자를 받아들이는 비어-있음의 한 형태라는 것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허기를 통해서 주체는 자신의 결여와 결핍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죽은 자들의 허기'가 불편한 이유다. 그런데 춘자는, 완벽한 연극을 배우 없는 연기로 정의하고, 그것을 죽은 자들의 허기로 에둘러버린다. 연기의 물적 토대는 배우이고 허기의 구체적 발아는 생존인데, 춘자는 어처구니 없게도 불가능함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춘자가 자신의 입에서 반쯤 비어버린 혓바닥을 꺼내고, 녹나무 잎으로 빨려드는 바람소리와 부서져 버린 진흙인형을 흉내낸다. 가만히 지켜보면, 하루를 겨우 버텨내는 청춘을 닮았다. 춘자는 자신의 심장에 손을 얹고서 15년을 살아온(또한 살아가야 할) 저 가파른 비대칭을 망연하게 바라본다. 그 끝에서 분명한 웃음이 천천히 걸어온다.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