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의 불운

by 박성현






금요일 밤의 불운


박성현



욕조에 더운 물이 가득하다 손목이 둥둥 떠다니다가 잠깐 가라앉는다 뒤집어지고 희고 매끄러운 손바닥이 떠오른다 아침 뉴스에 속보로 뜬 집권당 유력 정치인의 자살은 금요일 밤의 불운일 뿐 춘자는 따뜻한 블랜디를 마시며 뒤죽박죽 엉켜 있는 머리카락을 정리한다 온몸을 더운 물속에 집어넣고 숨을 멈춘다 두 번 더 멈추다가 아예 숨을 쉬지 않기로 작정한다 면도날이 오렌지처럼 둥둥 떠 있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녀는 아직도 욕조 속에 있고 손목의 라벤더 향은 버터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포플러나무 숲으로 까마귀 떼가 몰려간다 바다라 해도 무방한 사선 그리고 맹렬히 끓어오르는 낮의 사라진 냄새들, 춘자를 찾아온 사람들은 이중으로 잠긴 문틈에 슬며시 우편물을 밀어 넣고서는 모두 돌아갔다 금요일 밤의 불운도 그중 한 사람이다





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문예중앙, 2018.








[以後, 시작노트] 아예, 숨을 쉬지 않기로 작정했을 때 여자는 오늘이 금요일이고,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속옷을 벗고 라벤더 향이 은은한 목욕물에 머리까지 담그자 일주일 동안 쌓였던 통증과 구토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물의 먼 곳에서 희미하게 에테르 냄새가 난다. 물의 부력에 미세하게 떠다니는 손,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은 손에 문득 신경이 집중된다. 타월 위에 올려놓았던 스마트폰을 들고 뉴스를 읽는다. 여자는 유력 정치인의 자살 속보를 읽다가 지겨워진다. 여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고 절대적으로 무해하다. 여자는 불운한 금요일에 좀 더 이완되도록 아주 느린 음악을 선곡한다. 갑자기 여자는 중력이 없는 곳으로 버려지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여자의 아랫배와 허벅지가 물 속에서 천천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척추를 활처럼 구부리고 고개를 젖힌 채, 여자는 침묵의 완강한 고집을 받아들이고 있다. 여자는 금요일의 모든 초대를 거절했다. 사소한 수다도 데이트도 파티도 취소했다. 여자는 오로지 물 속에서 휘발하고 싶었다. 여자는 불운하다. 불운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불운하다고 스스로 판결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 불운은 단순명료하다. 많은 걸 요구하지 않는다. 욕조의 더운 물과 희고 가냘픈 손목, 속의 동맥만 있으면 족하지. 맞아. 포플러나무 숲으로 까마귀 떼가 몰려가고, 셀 수조차 없는 나뭇가지들은 바다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파도를 일으키고 있어. 저기, 태양이 잠시 머물던 곳에서는 낮의 냄새들이 사라지지 않으려고 맹렬히 울부짖고 있지. 그러나 오늘은 금요일, 여자를 찾아온 모든 사람은 초인종을 몇 번 누르고는 되돌아갔지. 금요일 밤의 불운도 그 중 한 사람이었지.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