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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May 09. 2020

요알못이 집밥을 즐기는 법

나는 요리를 못한다. 쌀 물을 적당히 맞춰 알맞게 밥 짓는 건 잘하는데 요리는 젬병이다. 대학생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먹은 굴소스 맛에 반해 굴소스로 요리를 해본 적은 있다. 레시피가 간단해서 괜찮거니 했는데 막상 만들고 나니 맛이 밍밍했다. 맛없지만 재료가 아까워 꾸역꾸역 먹은 경험 때문에 요리를 멀리하게 됐다.


요리를 못하는 사람의 선택지는 한정된다. 밖에서 사 먹거나, 배달을 시키거나, 반조리 음식을 먹거나 셋 중 하나다. 매번 밖에서 사 먹기에는 나가는 비용도 많고 자극적인 음식이 대부분이라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배달을 시키자니 배달로 받는 것보다 직접 가서 받아오는 게 더 편해서 내키지가 않았다. 일단 밥은 할 줄 아니 반조리 음식을 먹기로 했다.


자취 초반에 먹었던 음식들,  지금와서 보니 이걸 먹고 어떻게 버텼지 생각이 든다


처음에 주로 먹었던 음식은 굽거나 생으로 먹으면 되는 것 위주였다. 양념을 넣고 반죽해서 만드는 건 엄두도 못 냈다. 이때만에 도 계란, 햄 같이 굽기만 해도 괜찮고, 튀기면 그만인 냉동식품 위주로 먹었다. 반찬은 샐러드용 채소와 마트에 파는 김치, 그 밖의 밑반찬이 전부였다. 매번 비슷비슷한 종류의 음식만 먹으니 입에 금방 물리고 말았다. 좀 더 다른 걸 먹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서 다른 방법을 찾게 됐다.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고 집에서 요리하는 일이 적어지다 보니 그 수요에 맞춰 반찬가게 프랜차이즈가 생겨났다. 전에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파는 마른반찬, 장아찌류 등이 전부여서 사먹진 않았는데, 그와 달리 반찬가게 전문점은 이미 요리해 놓은 음식들이 많았다. 그래서 반찬가게 전문점에 처음 갔을 때 신세계였다. 그동안 집에서 만들기 힘든 음식들을 접하면서 풍족한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반찬가게를 만나기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라 하면 못할 것 같다.


집에서 해먹지도 않아도 되는게 좋았다


이사를 가게 되면서 잠시 위기가 왔다. 반찬가게 전문점이 이사 온 지역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눈높이는 올라갔는데 다시 굽고 생으로 먹던 시절로 돌아가려니 눈 앞이 캄캄해졌다. 이때 알게 된 게 마켓컬리와 같은 새벽배송 서비스였다. 온라인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것이 익숙지 않았던 터라 망설였지만 막상 반찬을 받아보니 반찬가게에서 먹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뒤로는 일주일마다 새벽배송으로 반찬을 받아서 먹게 됐다.


새벽배송 덕분에 반찬가지가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주로 집에서만 생활하니 요리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과거에 요리를 망친 전적이 있어선지 중간의 완충지대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밀키트'다. 밀키트는 요리에 필요한 재료가 미리 다듬어져 있고 양념장도 같이 있어 핏기를 제거하고 볶기만 하면 됐다. 요리를 하는데 식재료를 구입하는 시간이나 양념장을 만드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돼서 편리했다. 완전히 조리된 게 아니라서 어느 정도 요리하는 기분도 들어 좋았다.


밀키트로 만든 음식


같이 사는 룸메분은 내가 평소에 먹는 음식을 보고는 '자취하면서 챙겨 먹기 쉽지 않은데 잘 챙겨 먹는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배달이나 외식으로 점심저녁을 떼울수도 있었지만, 건강을 생각하면 직접 요리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밖에서 사먹는 대신 간단한 것부터라도 직접 해먹으려고 노력했었다. 조금씩 음식의 가짓수를 늘려보면서 요리를 못해도 건강하게 챙겨먹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언젠가 요리를 제대로 배워서 집밥을 해 먹는 날을 상상하며, 밀키트를 시작으로 조금씩 요리하는 걸 시도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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