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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May 10. 2020

무기력이 찾아왔다

그것은 조금씩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지금 해야 할 게 산더미라고 애써 외면해왔다. 결국 오늘 그것이 나를 집어삼켰다. '무기력'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자기를 돌보지 않은 채 쉼 없이 달려가는 사람을 향한다. 삼일 전부터 뭔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노트북을 열고 공부하고 글을 쓰다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었는데 그날따라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재밌게 보던 글도 눈에 읽히지 않아 금방 덮고 말았다.


하루를 통으로 쉬어봤다. 물론 내가 매일 인증해서 올리는 글을 그만두진 않았지만 오후 내내 공부 대신 미뤄뒀던 영화를 봤다. 그다음 날에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 다시 원래 하던 데로 돌아갔다.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었나 보다. 원래 오전에 끝냈어야 하는 공부를 오후까지 붙들어 맸다. 집에만 있기 답답하다는 생각에 밖에 나왔다. 길을 걸으면서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해야 할 일이 계속 미뤄진다'는 책망, '글-공부-글'로 이어지는 반복적인 일상에 대한 불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다'는 불안. 이 세 가지가 무기력을 만들어낸 것이다. 무기력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바로 '직면하기'이다. 나의 어두운 면을 꺼내보기가 두려워 외면하게 되면 오히려 무기력은 더욱 강해져 오랜 시간 허우적 될 수 있다.


나는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처내느라 어떤 불만이 내 속에 쌓여가는지 보질 못했다.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내면을 애써 외면해왔다. 그것이 결국 오늘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잠시 쉴 시간을 주자.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비타민 음료와 초콜릿을 샀다. 기운이 없을 때 먹으면 좋아지는 것들로 나를 달래기로 했다. 집에 오자마자 노트북을 열던 습관을 잠시 멈추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오늘 해야 할 것들을 잠시 뒤로 미뤄도 된다고 다짐하면서 머리를 비우려 노력했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오전 내내 짜증으로 가득 찼던 감정도 내려앉았다. 편의점에서 샀던 비타민 음료와 초콜릿을 먹었다. 이것이 직접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면을 돌보려는 시도였으니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기운을 차렸으니 책망과 불만 그리고 불안을 직면할 준비가 됐다. 남은 하루는 이 무기력이란 놈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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