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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May 21. 2020

우아하게 관찰하기

예술을 가까이하면 보는 것이 달라진다

아마도 대학교 4학년 막 학기였을 때였을 것이다. 서울에 열리는 전시회를 다녀온 친구는 내게 두 장의 엽서를 줬다. 그 전시회는 근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전이었다. 그때 받은 엽서가 나를 예술의 세계로 이끌어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학교의 구 본관이자 인문대학 건물이 르 코르뷔지에의 제자 김중업이 설립한 건축물이라는 것을 알고서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대학 친구에게 받은 두 장의 엽서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맞은 첫 휴일 르 코르뷔지에 전시회를 다녀왔다. 친구가 묘사한 전시회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멋지고 환상적일 거라 기대했던 나는 상상한 것과 다른 모습에 실망했다. 일련의 사진과 스케치들을 보면서도 감흥이 없었다. 그 대신 르 코르뷔지에의 철학에 대해선 인상 깊었다. 당시 내가 쓴 감상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았다.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길로 걸으면서 가진 신념이 가장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콘크리트로 된 현대의 아파트 양식을 만든 르 코르뷔지에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잘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빠르게 만들어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건축물을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아파트가 탄생하였고, 이는 생명에 대한 존중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반영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에 관해 무지했음에도 나는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전시회를 가게 됐다. 알 수 없는 사진과 그림을 꾸역꾸역 보면서도 오디오 가이드와 전시 해설을 보며 작품에 담긴 의도를 파악하려고 했다. 3년 간 전시회를 다니면서 나는 점차 예술에 대해 이해하게 됐음을 깨달았다. 예술의 역사와 예술가의 생애를 알고 나니 스스로 작품을 해석하고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술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결정적인 사건은 <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에 다녀온 날에 일어났다. 하루 24시간 동안 일상 속 예술 현상을 탐구하는 이 전시회에서 빛을 소재로 한 작품을 발견했다. 숨이 멎을 정도로 빛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작품은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전시회를 다녀온 후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지나쳤던 평범한 것들이 특별해지고, 선명한 색채로 다가왔다. 나는 특히 빛과 그림자, 규칙성 그리고 구도에 따라 달라지는 사물의 모습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사진으로 남겨놓아 수집하고 있다.


빛과 그림자

환한 형광등보다 은은한 자연광이 좋다. 사물에 그림자가 지면서 생기는 음영의 대비에 눈길이 간다.


규칙성

자세히 보지 않으면, 멀찍이 보지 않으면 모를 규칙적인 패턴들

구도

성인의 눈높이에서는 보지 못하는 구도들, 시선을 바닥까지 내리거나 올려다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오늘 나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우아한 관찰주의자>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 뒤편에 소개말에는 '셜록홈즈'와 'FBI'가 훔치고 싶었던 관찰의 기술에 관한 책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릴 적 셜록홈즈처럼 탐정이 되는 상상을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했다. 그 책을 집어 들어 계산대로 향하면서 문득 지금 하고 있는 UX공부와 관찰력이 서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보기에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포착해내는 관찰력은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날 것에 불과한 관찰력을 조금 더 다듬으면 더 빨리 그리고 더 자세히 핵심을 낚아챌 감각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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