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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Jul 04. 2020

자유는 냉엄하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을 읽고서

'자유'는 사실 냉엄하다. 그것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둔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단순한 방종과 자유는 결정적으로 다른 위치에 존재한다.


입사를 하고 난 후 처음으로 주말을 맞았다. 3일 내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얼굴을 익히고, 기획문서를 보며 이전 히스토리를 챙기는데만 해도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나는 바로 직전 회사에서 '내가 이 팀에서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이 회사에서도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지금까지 총 6번의 다양한 회사를 경험해 왔기 때문에 어떤 곳이라도 적응하기 쉽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내가 지금껏 경험했던 직장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자유롭게 일을 찾아서 동료와 함께 일하는 이곳은 내가 꿈꿔왔던 조직문화이지만, 막상 내가 그 문화 속에서 일을 하려니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분명 이 고비를 넘기면 잘 해낼 거라는 걸 알지만 어디서부터 시작점을 찾아야 할지 감이 도통 잡히지 않았다.


마침 회사에 비치된 서가에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이란 책이 눈에 들어왔고, 이 책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이건 반드시 지금 읽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막 책을 덮은 지금 지적자본론을 읽게 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초반은 다케오 시장과 마스다가 한 행사에서 인터뷰했던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당장 읽어야겠다는 결심이 들 정도로 사로잡혔던 문장은 바로 마스다가 생각하는 자유에 대한 정의에서였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자유가 냉엄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런 의미에서다. ... 어쨌든 기획을 세우려면 자유로워져야 한다. 관리받는 편안함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동안 상사의 지시를 받거나 정해진 일을 해내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다르게 일할 수 없을까 고민하고 방식을 바꿔보기도 했고, 남는 시간을 활용해 흥미로워 보이는 일(혹은 해결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을 했었다. 그러나 이미 하고 있던 일을 확장하거나 개선하는 것과 일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은 마스다가 말한 '자유'에 따라 일하는 곳이다.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동료에게 그 중요성을 설득해서 일을 해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아무 일이나 해도 된다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시간과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수많은 해야 할 일 중 내가 제안한 일이 상대에게 우선순위에 올리려면 그 일이 왜 해야만 하는 일인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지적자본론에서 언급한 소비 사회의 세 번째 단계(서드 스테이지)에서 요구하는 '제안 능력'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이 중요하다. 디자인은 가시화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즉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념이나 생각에 형태를 부여하여 고객 앞에 제안하는 작업이 디자인이다.


이렇다 보니 내 관심사는 이 조직의 일하는 방식에 쏠릴 수밖에 없다. 나는 버디*와 함께 "어떻게 일을 시작하는가, 다른 동료와 어떻게 협업을 하는가,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는가"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버디는 동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란 단어를 반복해서 얘기를 했는데, 얘기를 들으면서 내내 '이렇게 일하면 과연 효율적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팀에서 정해주는 업무와 역할에 익숙해졌다 보니 어떻게 이런 방식이 잘 작동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지적자본론에선 '효율'에 대한 무한한 찬양에 대해 경계하고 있었고, 아래 문장을 읽고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수직적 조직의 사원은 수직 계통을 타고 위쪽에서 내려온 지시를 시행하면 그만이다. 그 정당성을 검토할 시간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즉시 행동에 옮겨 '효율적으로' 성과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자유에 기반을 둔 조직에서는 다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자문해 보고 해답을 찾아내야 한다. 더구나 그 해답은 자기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답은 항상 고객에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원은 지시를 내리는 상사가 아니라 고객을 바라보아야 한다.


수직적인 조직에선 효율적으로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자유로운 조직은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효율만 추구하다 보면 어느새 고객이 아닌 조직을 위한 일만 하게 될 수 있다. 마스다는 종장에서 '자유'의 정의를 다시 한번 언급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을 얻으려면 신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동료들은 동일한 위치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그 끝에는 고객이 있다. 마스다가 말하는 자유로운 조직은 동료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고객 가치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좋은지 각자 자유롭게 구상하면서 기획하고 실현해나간다.


나는 버디에게 앞으로 함께 일할 동료분들과 식사할 자리를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곧바로 일을 시작하면 분명 여러 면에서 부딪히고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그전에 상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를 안다면 일을 하면서도 오해 없이 서로를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스다는 일하면서 얻는 부산물 즉 뜻밖의 기회는 무언가를 만들어 낸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얘기한다. 0에 아무리 무언가를 곱해봐야 0인 반면, 1을 만들어내야 비로소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처럼 나 또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어 0을 1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서 쭈뼛대던 것을 그만두고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일단 해보자.


*신규입사자가 회사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 사수와 유사하지만 일을 지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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