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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Nov 15. 2020

마침표를 찍는 것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서

"이거 선물이에요."

S는 영풍문고 로고가 박힌 종이백을 내게 건넸다. 안을 얼핏 보니 손만한 크기의 작은 책이었다.

"꽃비내린이 책을 읽는 걸 좋아하니까 근처 서점에서 사느라 늦었어요."


생일도 특별한 날도 아니었지만 나를 생각해 선물을 주었다 하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책의 제목은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으로 류시화 시인이 쓴 에세이집이었다. 읽을 때마다 마음이 편해진다며 준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당장 읽고 있는 책들이 있어 뒤로 미루어 두고 있었다.


책을 집어 든 건 다름 아닌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였다. 이야기 중독이라고 들어봤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병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이야기 중독자라고 명명하고 있다. 아니, 알코올 중독도 니코틴 중독도 아닌 이야기 중독이라니.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이야기 그것도 책을 읽지 않으면 한 주 두 주는 괜찮지만 한 달이 넘어가면 불안해지고 우울해지기까지 할 지경에 이르곤 했다.


이를 몰랐을 때는 왜 스마트폰에 뭔가를 계속 갈구하듯 텍스트나 영상을 넘기든 보았고 그러면서도 공허함을 감추질 못했다. 그런 와중에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펼쳐 첫 문장을 읽어내리는 순간 모든 불안이 해소되고 안정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 경영/경제 위주의 책만 읽다 보니 이야기 중독 증상이 스멀스멀 올라왔었다.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읽을 책이 없나 찾다 미뤄뒀던 그 책을 펼쳤고 현재는 중반까지 읽은 참이다.


책에는 류시화 시인이 인도에서 겪은 일화가 담겨 있었다. 미친광이 사두에게 돈을 뺏기듯 준 것부터 30분 동안 버스를 멈춰놓고 친구와 이야기하러 간 버스운전사까지 한국에서라면 황당할 만한 일들이었다. 저자는 그 상황에서 순진하게 속아 넘어가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그것은 일어날 일이었으니 받아들여라며 마무리를 짓곤 했다. 그런 점이 맥 빠지게 했지만 어쩌면 인도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적용해볼 만한 점이 없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가기를 기대하지 말라.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이라.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오게 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가게 하라. 그때 그 삶은 순조롭고 마음은 평화로울 것이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중


어제 지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요즘 브런치 글이 뜸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많이 쓸 때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편씩은 썼으니 그렇게 느껴질 만했다. 매일 글을 쓸 때는 글감을 찾느라 하루를 깊게 돌아보는 일이 많았는데 글에서 멀어지고 나니 감각이 무뎌진 것 같다. 왜 멀어졌을까 생각해보면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내용들로 채우기가 싫어졌던 게 아닐까 싶다. 글을 쓰면서 '예전에도 이 내용을 언급했던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을 조금씩 받으면서 글이 진부 해지는 것만 같았다. 주로 기획 관련 글을 보고 구독해주신 분들이 많아 에세이 글로만 채우는 것도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다.


핑계...일 수도 있겠다. 원래는 생각이 쌓일 때마다 글을 통해 해소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러질 못하다 보니 머리가 무거워졌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이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다시 펜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무기력해 있었다. 앞으로 뭘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글을 쓰면서 다시 천천히 되짚어 보고 싶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서 말한 것처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일어난 일이니 붙잡으려 하지 말고 흘러 보내자. 누군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든 간에 결국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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