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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Nov 22. 2020

늦잠

지하철 환승역을 지나며

푸른 선과 붉은 선이 나란히 늘어진 그곳. 평일 출근길에는 각자 일할 자리를 찾아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더니 주말에는 인적이 드문 텅 빈 공간에 온 것만 같았다. 회색과 검은색 옷을 입은 무리들의 느릿느릿한 발걸음 탓이라 여기며 걷는 걸 지루해 했었다. 막상 한적한 그 통로를 지나니 새삼 통로가 길구나 싶었다. 한참을 걸으면 내 몸이 무거운 건지 통로가 골리려 몸을 늘어뜨리는 건지 그 끝은 하염없이 멀게만 느껴지더이다.

꿈 뜨는 느낌이 여전한 것은 지금 마음이 여유롭지 못해서다. 약속시간보다 한참이 지나 일어나버렸다. 진동음 소리에 눈을 뜨니 모임장한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아, 오늘 글쓰기 모임이 있었지' 알람을 끄며 깊은 숙면의 취했던 자신을 욕하며 이불에서 벗어나 상황을 파악했다. 지도 앱을 꺼내 가장 빠르게 도착할 방법을 찾아보았다. 세상에. 아무리 빨라봤자 약속시간보다 1시간 뒤다. 마치 눈으로 째려보면 바뀌기라도 할 듯 휴대폰 화면 속 예상 도착시간을 뚫어져라 봤다.

나답지 않아. 평소엔 칼 같이 지키더니 하필 오늘이니. 모임장에게 방금 일어났다 전하며 정말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가는 길에 빵 몇 가지를 사서 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도착하면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이런저런 걱정을 하는 와중에 통로 끝이 보였다. 나는 막 출발하려는 지하철에 얼른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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