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비내린 Dec 20. 2020

메시지가 담겨 있는 그림

로즈 와일리 전시를 보고서

그림은 대단한 무언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림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그림은 그냥 그림이죠.
- 로즈 와일리 - 


티켓을 건네고 전시장 입구를 가린 검은 천막을 걷어 젖히자 눈 앞에 로즈 와일리의 작품들이 펼쳐졌다. 나는 광대까지 올라온 미소를 내려놓을 줄 몰랐다.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밑그림에 원 색에 가까운 물감으로 투박하게 덧칠한 그림들을 보는 내내 기분 좋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림의 대중성을 추구했던 로즈 와일리는 난해한 그림 대신 익숙한 명화를 오마주한 그림,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재를 주로 다뤘다. 초심자도 그림을 보면서 와일리가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은지를 알아채기 쉽다.


오른쪽 작품은 로즈 와일리가 키우는 검은 고양이 피트이다. 그림은 피트가 날아가는 새를 쳐다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2020년에 그려졌다는 배경을 이해하고 갈색 테두리를 주목해보자. 올해는 코로나 19로 많은 이들이 집 안에서 주로 생활해야만 했다. 밖을 돌아다니지 못하는 제약 속에 살아가는 우리를 생각하며 로즈 와일리는 갈색 창틀 밖으로 보이는 고양이를 그렸다. 뒷모습이지만 튀어나올듯한 눈알을 옆에 그려넣음으로써 고양이가 새를 호기심 어리게 쭉 지켜보고 있다는 재밌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로즈 와일리는 축구를 좋아하는 남편의 영향을 받아 축구와 관련된 그림들도 자주 그렸다.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보고 작품을 그리기도 했는데 이번 전시 전에 두 사람이 만나 대담을 나눴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시장에서 마치 카톡을 주고받는 듯 영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의 영역에 대해 묻고 답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중 예술가에게 '성공'의 정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로즈 와일리의 대답은 작품 그 자체보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에 초점을 둔 그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골을 넣고, 경기를 이기고, 트로피를 거머쥐기 위해 축구 선수들은 항상 노력합니다. 화가들에게 승리란 무엇일까요?"

"이런, 나도 알고 싶네요. 아트 작업에서 성공의 의미를 정의하기는 어려워요. 어떤 '포인트'나 '퀄리티'를 기준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죠? 정답은 그저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느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에요."



로즈 와일리의 전시를 보며 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눈을 키울 수 있었다.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혹은 영상이든 간에 모든 작품에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것. 글이라면 유난히 반복되는 단어가 있을 수 있겠고, 그림과 사진이라면 포커스된 대상, 영상이라면 장면마다 의도된 구도가 있겠다. 사실 같이 그리는 게 전부가 아닌 걸 알게 되면서 언젠가 그림만으로도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작품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