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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Dec 27. 2020

완벽하지 않아서 거절해도 괜찮더라

"세상에 태어나 기지 않고 걷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걸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난 앞으로 수십 번 실수를 할 테고, 수백 번 실패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나를 만나는 것이 시작이다> 중

점심을 먹고 집 근처에 커피가 맛있는 카페를 들러 가려고 집을 나서던 참이었다. 룸메는 오늘 어디 가냐며 물었는데 나는 내년에 이사 가기 전 꼭 알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여기 카페가 쓴맛이 없고 고소하게 잘하거든요. 이사 가고 나면 여기 다시 들리기 힘들 테니까 그전에 어떤 원두를 쓰는지 알고 싶어서 겸사겸사 가보려고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나서 준비했던 멘트를 날렸다. "혹시 어떤 원두를 쓰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뿔싸.. 말의 순서가 잘못됐나 보다. 직원이 '그런 건 왜 묻지'하는 표정으로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나는 변명하는 것마냥 "아, 제가 여기서 커피를 마셨는데 맛있더라고요"하고 얼버부리고 말았다. 기대와 다른 반응에 창피해하며 아메리카노를 들고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창피해 죽겠다!' 하면서도 '그래도 시도라도 한 게 어디야'하며 이렇게 해보는 것도 경험이지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는지 룸메는 벌써 왔어요? 하며 깜짝 놀랐다. "원두는 뭔지 물어봤어요?"라는 물음에 그게.. 내가 다짜고짜 물어선지 경계하더라고 라고 말했다. "그럴 수도 있죠. 시도라도 한 게 어디예요"라며 괜찮다는 룸메 말에 그래 시도라도 한 거에 만족하자고 속으로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뭘 이런 걸 다 묻냐 하고 실수할까 봐, 실패할까 봐 멀뚱멀뚱 보기만 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그때 왜 안 했을까 후회하면서도 언제나 그렇듯 또다시 멈춰서 있었을 것이다.

어떤 글에서는 완벽주의자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실패가 두려우니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면 금방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스스로도 나는 완벽주의자야 라고 생각했었. 올해 들어서 완벽주의적인 면모를 벗어던진 것 같다.

<나를 만나는 것이 시작이다> 글의 필자는 시작도 못하고 포기하는 이유가 실패를 두려워서라기 보다 나의 실체를 만나는 게 두려워서 라고 말한다. "나의 스펙이든, 주변의 기대든, 내가 만든 허울이든" 껍데기가 아닌 나의 본질을 마주하고 나서야 시작점을 세울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해서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해!"라는 강박 때문에 실패도 하고 실수도 하는 내 실체를 만나기 두려웠나 보다. 이제는 완벽하지 않는 나를 인정하고 그까짓 꺼 뭐라는 생각으로 일단 해보게 된다. 처음엔 껍데기를 내려놓고 나서 허한 마음에 혼란스러웠는데, 그 빈자리에 어느새 다른 것들이 채워졌다. 그것을 나는 유연함, 관대함, 공감, 평온함과 같은 감정으로 설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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