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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Dec 31. 2020

2020년의 마지막을 기리며

2020 회고

올해 들어서 주변에서 회고글을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마도 1년 사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장과 배움에 뜻이 있는 인연들로 내 주위를 채워서 이지 않을까 싶다. 회고와 계획은 내겐 섬뜩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였다. 하루하루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장기적인 목표를 정해놓고 끝까지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기대한 만큼 성취하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려웠던 게 컸었을지도 모른다.


회고글을 쓰기 전 캘린더와 사진첩 그리고 내가 기록해왔던 것들을 들여다보며 당시에 해왔던 일들을 정리했다. 남들과 비교한다면 한없이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결과물이지만, 회고란 남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에 더 충실해지기 위한 목적이 더 이상 남과 비교하는 대신 나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최근에 몽환적인 음색의 위노나 오크 음악에 푹 빠져 반복 재생해서 듣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Lonely Hearts Clubs를 들으면서 회고 글을 작성했으니 한 번 들으면서 읽어보길 추천한다.


https://youtu.be/YNW8ak2QCCc

위노나 오크 - Lonely Heart Clubs


여행

새해에 대학 친구들과 셋이서 여수 여행을 떠났다. 서울 위치에선 남쪽 끝자락에 가까운 그곳을 추진력 있는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가보지 못했으리라. 부산 바다도, 강릉 바다도, 서해 바다도 봤지만 여수 바다는 지금껏 본 바다와 달랐다. 바다마다 성격이 다르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여수 바다는 잔잔하고 부드러워 멍하니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여수 여행의 영향을 받아서 일까 그전에는 서울 시내 가까운 지역만 돌아다녔다면 먼 거리의 여행도 다니게 됐다.


1박 2일로 떠난 경주여행, 회사 일에 지쳤을 때 휴가를 내고 무작정 내려갔다. 인스타그램에 아는 지인 올렸던 안압지 사진이, 작년 다녀간 화성행궁에서의 여운이 다음 여행지는 경주라고 말하고 있었다. 운이 좋았던지 마침 경주에서 야간투어 행사를 무료로 진행다. 등불을 받고 경주의 주요 건축물을 돌아보며 해설가가 설명하는 역사를 듣고 소소한 체험도 진행했다. 해설을 들으며 알게 됐는데 '안압지'라는 명칭을 최근에는 동궁과 월지로 불리고 있었다.


안압지란 명칭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신라의 찬란했던 역사가 사라지고 폐허가 된 장소를 보고 쓸쓸하게 여겨 오리와 기러기만 찾아오는 연못이라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후 복원사업을 하면서 신라시대에 이 연못을 '월지'라 불렀다는 사실을 알고 정식 명칭을 '동궁과 월지'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나중에라도 씁쓸한 이름 대신 원래 이름을 찾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름처럼 달이 뜬 밤에 월지의 모습이 장관이라고 한다.


회사를 나오고 나서 우울함과 무력감이 찾아왔었다. 그 감정에 빠져들기 전에 마음을 다 잡을 시간이 필요했다. 가야지 하면서도 가지 않았던 제주도를 9년 만에 다시 찾았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이후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그곳에서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첫날 흐린 날씨에 이렇게 제주도 여행을 망치는 걸까 하며 걱정했었는데, 뭉성한 구름이 바다와 만나 멋진 풍경을 만들 줄이야.


구름의 색과 바다의 색이 서로 엉켜 있어 그곳에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마치 구름 위에서 파도를 타는 듯했다. "이렇게 평화로운데 나는 뭘 그렇게 조급해했나" 파도 위를 타다 떨어져도 다음 파도를 기다리고 또다시 오르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서핑 하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소

여기저기 참으로 많이 옮겨 다녔다. 이사도 올해만 세 번, 직장도 이번이 세 번째다. 주로 셰어하우스에서 지냈던 나는 첫 룸메로 깐깐한 사람을 만나 마음고생을 했다. 그다음, 또 그다음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맞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참지 말고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괴로운 상황에도 변화가 두려워 그 자리에 머물기만 하면 나만 상처를 받는다. 다행히도 나를 존중해주고 같이 화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기에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있는 곳은 내 또래 사람들이라 얘기도 잘 통하고 재밌다. 혼자 살 때보다 확실히 누군가 집에 함께 살 때 외로움이 덜하다는 걸 느낀다. 내년에 이사 갈 집은 올해 말에 서울에 올라온 언니와 동생이 있는 집이다. 가족들이 가까이 살게 되니 든든하다.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가족 관계를 소홀히 했던 걸 반성하고 앞으로 가족들을 잘 챙기려고 한다.


아르바이트, 인턴, 정규직 순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 사이사이로 자잘한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3개월 이상 일한 곳은 아니라서 제외. 현재 직장에는 PM이 나 밖에 없어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피드백을 못 받는 게 참 아쉽다. 한 사람 몫을 빨리 하고 싶은데 그만큼 따라와 주지 않는 역량들이 눈에 보여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이다. 그래도 이 스트레스는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 좋은 밑거름이라 본다. 대신 기대만큼 못했다고 자책하는 건 금지.


회고를 하면서 업무일지 쓰기를 덜 한 걸 깨닫고 다시 매일 회고를 하고 있다. Keep, Problem, Try로 나눠서 잘하고 있는 건 Keep에, 잘 못하고 있는 건 Problem에, Problem을 해결할 방안을 Try에 적는다. 이 방식이 좋은 건 잘한 것과 잘 못한 것을 감정적으로 보는 대신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고 어떻게든 해결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계속할 좋은 습관 중 하나.


이룸

크리에이터 클럽에서 일주일간 습관 만들기로 '오전 8시 30분까지 글쓰기 챌린지'를 완주했다. 그다음에 내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모임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때 누가 대신 만들어주기 기다리지 않아도 같이 할 사람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커리어 관련해서 많은 조언을 들었다. 기획 강좌에서 뵈었던 기획자분, 잇다 멘토로 활동하시는 기획자분,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시는 기획자분, 페이스북에서 만난 기획자분, 직장에서 만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는 PM분들 그리고 동료들까지 많은 분들께 용기 내서 물었고 그 덕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빨리 찾았던 것 같다.


다만 PM이 가져야 할 역량은 많은 데 그걸 다 해내지 못하는 기분이다. 커뮤니케이션 누수는 어떻게 줄일 것이며, 프런트엔드 경험이 적은 개발자에게 기획의도를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이며, 데이터를 딥 다이브 하게 분석해서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뜯어봤을 때 어설프게 하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 크다. 가장 먼저 배우고 싶은 건 뭘까. 데이터 분석이다. 제대로 해석하고 실험하고 의미를 도출하는 법을 알고 싶다. 성급하지 말고 하나씩 천천히.


브런치 시작. 한달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고 한달자기발견, 한달브런치를 거치면서 현재 기준 793명의 구독자도 생겼다. 브런치 덕에 얻은 기회들이 너무 많다. 모비인사이드에서 외부필진 제안을 받아 'UX분석의 정석'을 기고했고, 브런치를 통해 스타트업 CEO와 PO/PM 분들과 만나서 얘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내 글을 읽고 도움이 되었다는 취준생의 메일, 밀리의 서재가 준 선물 등 직접 만나진 않았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경험들을 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줬으면 하는 내 소망이 이뤄진 것 같아 기뻤다. 책 출간 기회도 예상보다 일찍 왔었는데 내가 누구에게 가르쳐줄 만큼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다고 판단해서 아쉽지만 거절했다. 다음에 좀 더 내 역량을 키우고 나면 나만의 책을 내고 싶다.


8주간의 달리기 트레이닝을 하고 30분 달리기에 성공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1분 달리고 1분 쉬고 하는 것도 헉헉댔는데 한 주 한 주 달릴수록 내가 이만큼 더 뛸 수 있네?를 많이 실감했다. 아직은 10분만 지나도 금방 힘들어하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달리다 보면 1시간도 거뜬히 달릴 만큼 단단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작년에 한 번 10km 달리기를 한 뒤로 마라톤 대회를 참여하지 못했는데 내년에는 다시 10km에 도전하고 싶다. 이번엔 1시간 이내로 달리는 걸 목표로!


시작

원티드 북클럽장으로 UX 관련한 책 모임을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4명 이상이 모여야 진행할 수 있어서 확정은 아니지만 만약 된다면 내년 1월에 시작하지 않을까 생한다. 올해 기획자를 모아 소규모로 모임을 진행했었는데 아직 미숙해서 어떻게 모임을 이끌고, 참여를 독려해야 하는지 이런 부분을 잘하지 못했다. 흐지부지하게 끝난 모임이 아쉬워 이번에는 외부 플랫폼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지난번에는 주제도, 기간도 정해지지 않았던 점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UX 책 읽기라는 명확한 주제와 5번의 만남이라는 기간을 정해두고 제대로 해보려고 한다.


위에서 책 출판을 미룬다고 했었는데 사실 브런치에서 연재했던 에세이를 모은 책이 어제 나왔다. 크리에이터클럽에서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의기투합해서 돌아가며 '나'에 관한 주제로 글을 썼고 글 중에 가장 좋았던 내용만 추려 책으로 엮었다. 작년에 배웠던 일러스트레이터로 어찌어찌해서 표지도 그럴듯하게 완성했다. 서로 직장생활로 바빠 책이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한 해 넘어가기 전에 끝낼 수 있어 다행이다.



PM고수 만나기. PM 온라인 강의를 들었는데 실리콘밸리에서의 PM 역할과 업무방식을 알고 나서 충격이란. 무작정 하는 게 아니라 하나씩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할 수 있구나 깨달음을 얻었다. 강의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PM 고수들을 만나라는 조언이었다. 매 강의마다 Good PM과 Great PM의 차이를 설명해준 덕에 PM 일을 잘한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강의에서의 조언처럼 사수가 없는 스타트업에서 제대로 성장하려면 PM 고수를 찾아 일하는 방식을 배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PM 모임, SNS 등에서 활동하는 PM분들께 연락해 직접 만나 뵙고 배우려고 한다.


올 한 해도 수고한 2020년의 나에게 감사 인사를

수고 했어,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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