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입사한 뒤로 2020년 4분기가 끝나고 OKR 회고하는 시간이 왔는데요. PM으로서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고민하면서 결국 함께 일했던 동료분들의 의견을 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000님의 피드백을 받으려고 합니다 ㅎㅎ 긴 내용은 아니니 3분만 시간 내주셔서 작성 부탁드려요 익명이니 부담 없이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월이 끝나가기 전에 함께 일해준 디자이너와 개발자분께 슬랙 DM으로 피드백을 구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 나와 일해 보면서 객관적으로 짚어줄 동료에게 묻는 게 더 확실할 것 같아서다.
피드백을 받는다는 건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외면하고 싶었던 부족한 부분을 눈 앞에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스로 피드백을 받자고 결심하게 된 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켜켜이 쌓인 뒤에 지난날을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피드백을 주는 사람도 어렵다. 무엇을 얘기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더 잘하고 싶은 역량(기획문서, 커뮤니케이션)을 위주로 질문을 구성해서 설문지를 만들었다. 결과를 받고 나서 그들이 좋은 말만 해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왜 이 기능이 필요한지, 꼭 구현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짚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도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개발자 J
"기능을 출시하고 나서 추적도 잘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잘 개선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 디자이너 P
세부 기획에 집중하느라 놓쳤던 것들이었다. 어렴풋이 문제정의나 가설 측정을 제대로 해야겠다 생각했었지만 당장 보이는 사안을 따라가기 바빠서 잘 챙기지 못했다. 가장 잘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자신이 한없이 부족해 보여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부족한 걸 알았으니 이제부터 하나씩 해결하면 되지 않아?"
힘들어하던 내게 동생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 하나씩 해결하면 되지. 그런데 나는 어설프게 할까 봐 그게 두렵더라. 문제 정의도 어설프고, 가설도 어설프게 정해서 결과가 좋지 않을까 봐.
처음이면 어설픈 게 당연한 걸 알면서도 어설픈 모습을 보여주는 게 참 어렵다. 틀려도 툭툭 털어내고 다시 도전하는 그런 용기가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하고 싶진 않아서 안면도 없는 PM분께 메일로 고민상담을 보내고, 관련 책을 읽고, 피드백에 받았던 내용 토대로 조금씩 실천해보려 한다.
변화가 거의 없어 보일 정도로 느릿느릿하더라도 뭐라도 시도하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늘 망설이게 될 때마다 누가 등을 살짝 밀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늘 옆에 누가 있어주는 건 아니니까. 결국 혼자서 해내야 할 때가 올 테니까. 스스로 등을 떠밀어 주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