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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Dec 11. 2022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리더의 소임

"지난번에 말씀하셨을 때 이렇게 하는 걸로 얘기가 되었는데 갑자기 다른 얘기를 해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전부터 계속 같은 얘기를 했어요 그걸 다르다고 하는 게 이해가 안돼요"


결국 참아왔던 말문이 터져버리더니 순식간에 회의실이 차가워진 느낌이었다. 그놈의 얼라인 얼라인. 전주만 해도 이렇게 하자더니 이번엔 또 이게 아니라고 하면 어쩌라는 거지? 속으로 생각만 해온 게 입 밖으로 내뱉어 버렸다. 이제 끝이다. 퇴사를 해야 하나? 이제 이 상황을 어떻게 하지? 등등 머릿속에 빠르게 돌아가는 생각들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열이 났다.


CPO님은 같이 들어온 PO분과 남은 얘기를 마무리했고 나는 울컥한 마음을 몇 번이고 삼키면서 노트북의 자판을 만지작거렸다. 회의가 끝나자 CPO님은 나와 잠깐 둘이서 얘기하자고 했다. 둘만 남게 되자 침묵이 가라앉았다.


나는 무슨 말을 꺼낼지 몰라 눈을 맞추지 못하고 애꿎은 노트북만 째려보고 있었다.

"꽃비내린"

네라고 뱉는 순간 울음이 터질까 입만 뻥긋했다.

CPO님이 다시 나를 부르자 그제야 고개를 들었고 '이제야 보네'하며 싱긋 웃으셨다.


회의 때만 해도 냉정하게 얘기하던 분이라 부드러운 태도에 당황스러웠다. 뭐지? 나를 책망하려던 게 아니었나?


"요즘 많이 힘들었죠?"

"네.."

그 한마디에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CPO님은 휴지를 가져오며 내가 차분히 가라앉길 기다렸다.


"뭐가 많이 힘든 것 같아요?"

"J님과 얼라인 하는 게 힘들었어요"

"사실 제가 원래 해오던 일을 새로 오신 PO분이 오시면서 그분께 맡기시니까 제가 배제당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왜 그렇게 느껴졌는지 말해줄래요?"

"제가 일을 못해서 그런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이전의 겪었던 일들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처음으로 기획자로 인턴을 시작했던 일, 좋지 못했던 피드백들에 상처받았던 일. 그때의 일이 나에겐 트라우마처럼 남아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언제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CPO님의 눈시울이 붉어진 게 보였다.

"트라우마를 꺼내는 건 쉽지 않은데 이렇게 얘기해줘서 좋았어요. 저는 꽃비내린님을 봐왔을 때 너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연차에 비해 빨리 성장하고 있어요."


"사실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도 그게 진심 같지 않고 빈말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건 아마 꽃비내린님이 생각하는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그런 걸 거예요.  꽃비내린님은 아직 1년 8개월 정도 PO 일을 경험했잖아요. 7~8년 차에 할 수 있는 일을 조급하게 생각한 게 아닐까 싶어요.


꽃비내린은 아직 주니어잖아요 CPO가 생각하는 범위와 주니어가 생각하는 범위는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얼라인을 맞추기 어려웠다고 생각해요. 제가 더 자주 얘기하고 했어야 했는데 시간이 없다 보니 그러질 못했던 것 같아요. 그 부분은 제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리드 PO분을 꽃비내린님과 같은 스쿼드에 배정한 것도 중간에서 소통을 더 자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서였어요. 꽃비내린님은 정말 잘하고 있어요. 저 아무나 칭찬하는 사람 아니에요. 진짜 잘하는 사람한테만 칭찬해요."


CPO님의 말에는 그 어떠한 비난도 책망도 없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서 얘기를 해주셨다. 그제야 상대의 진심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정말 나를 위해 생각해주는구나. 오랜시간 무겁게 짓누르던 딱지들이 떨어져 나갔다.


"저는 저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일했으면 해요. 그래서 더 좋은 분들을 많이 모시려고 하고요. 꽃비내린님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에 있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잘하는 PO분들을 보고 배우면서 경험해보면 나중에 뛰어난 PO가 될 거라 생각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눈물로 범벅되어 말을 잇기 어려운 상태에서 최대한 낼 수 있는 투박한 감사의 말이었다. CPO님은 빙긋 웃으며 인사를 받아들였다.


이제 일어날까요? 하며 회의실을 나가면서 내년엔 꽃비내린님 안 울리기를 목표로 해야겠네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CPO님을 보면서, 리더라는 자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내가 훗날 리더로서 팀원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면, 이번 일을 경험 삼아 상대의 진심을 듣고 헤아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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