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밤
작년부터 권태를 느꼈다. 스타트업의 구호처럼 여기는 빠른 성장과 대체불가한 인재란 단어에 질려버렸다. 일을 대충 한 건 아니지만 그 이상 무언갈 시도하진 않았다.
침체된 나를 일으켰던 건 뜻하지 않은 기회서였다. 링크드인에 스픽의 마케팅 전략 강연 소식이 올라왔고, 평소 관심 갖고 있던 브랜드였기에 신청했다. 마케팅의 뒷배경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스픽의 일하는 문화와 태도였다. 이런 문화에서 일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했다.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일하는 방식을 바꿀 때가 왔음을 인정했다.
첫 번째는 질문은 질문으로 받아들인다. 작년에 유저 인터뷰 보상을 위해 기프티콘 결제를 요청했었다. 그때 이 비용을 투자하면 매출에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그 질문을 부정으로 받아들였고 리서치는 중단했다. 돌이켜보면 회사는 유저 리서치가 익숙하지 않은 조직이었고 리서치로 얻을 이득을 몰랐기 때문에 질문했을 것이다.
질문을 받으면 그다음은 포기가 아닌 답을 하는 것이다. 다시 한다면 리서치를 중단할 게 아니라 보상 없이도 인터뷰에 응할 유저를 찾아서 리서치를 하고 결과로 증명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개발 없이 검증하기다. 많은 제품개발 관련 서적에선 꼭 제품을 만들어 검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제껏 제품 없이 검증해 본 경험은 없었다. 이 주 단위로 개발을 진행하다 보니 개발자를 일 없이 놀리면 안 된다는 압박이 있었다. 신규 기능이 번번이 반응 없다 보니 팀에서 '어차피 안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혔다. 부끄럽게도 나조차 신규 기능은 잘 안 되는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스타트업은 성공보다 실패를 마주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실패를 실패로만 끝내면 발전하지 못한다. 올바른 실패는 모호함을 하나씩 제거하며 성공할 가능성을 높인다. 더 빨리 많은 시행착오를 위해 개발 없이 검증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올해 들어 새롭게 시도하는 것들이 많다. 아직 헤매고 막막하지만 이걸 해냈을 때 성장한 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