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다른 디테일

스물네번째 밤

by 꽃비내린

오랜만에 친구가 동물원으로 나들이를 제안했다. 전부터 꼭 가고 싶었던 곳이라 기대를 많이 했다. 얄궂게도 그 주 내내 비 내리기 시작했고 약속한 날도 비소식이 들렸다. 실내에서 즐길만한 건 없나 부랴부랴 찾다가 동생의 권유로 티코스를 해보기로 했다. 마침 성수에 오므오트라는 찻집을 눈여겨보고 있던 터라 곧바로 예약했다.

다른 찻집에서 티코스를 경험하긴 했다. 그때는 세 가지 준비된 차와 다과 등을 하나씩 내오면서 차의 맛과 향에 대해 설명을 듣는 정도였다. 반면 오므오트에서 진행한 티코스는 한 편의 예술을 체험하는 듯했다. 여기선 티코스 대신 티세레모니라는 표현을 쓴다. 세레모니의 의미처럼 차를 눈과 귀로 감상하고 음미하는 의식을 75분간 진행한다.

매년 시즌마다 컨셉을 바꾸는데 이번 컨셉은 십장생으로 해, 물, 소나무, 학 네 가지를 주제로 코스를 진행했다. 놀라웠던 건 차와 다과뿐 아니라 담겨 있는 그릇과 음악이 모두 이 컨셉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림을 볼 때 화가의 생애와 시대상을 고려해 작품에 담긴 의미를 찾아가는 것처럼, 코스마다 차와 그릇에 담긴 의미를 찾아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가령, 둥그런 찹쌀 경단이 올려진 그릇은 푸른색 원이 떡 주위로 파동처럼 여러 개 그려져 있는데 마치 잔잔한 물에 돌을 던져 파문이 이는 것을 표현한다.

십장생은 열 가지 사물이다. 그중 네 가지를 다루었으니 나머지는 다음 시즌에서나 만날 수 있다. 나는 이점을 영리하게 설계했다고 생각했다. 처음 자리에 앉으면 책갈피를 선물로 받는다. 책갈피는 병풍의 일부를 닮았다. 남은 두 시즌까지 방문해 세 책갈피를 모두 모으면 병풍이 완성된다. 코스에 만족하면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고 요즘 유행하는 좋아하는 굿즈를 모으는 재미를 준다.

나는 찻집을 나서면서 친구와 어떤 점이 매력을 느꼈는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중간하게 하는 것보다 남다른 디테일을 살려 돈을 낼만한 경험을 파는 것. 이번에 그 중요함을 몸소 체험한 날이었다.


추신. 참고로 사진 속 디저트는 학을 현상화한 파르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