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hemian Writer Feb 02. 2023

신지훈,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

어떤 추억은 추억으로만 남지만

    모질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아팠던 작별을 나눴던 고마운 사람이 있었다. 이별 후에도 우린 얼마간 아주 가끔 서로의 안부를 나눴다. "우리 참 밝게 웃고 있어", 그 사람이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게 업데이트가 안 돼." 그때, 추억의 총량은 정해져 있음을 느꼈다. 지금도 나는 생을 지탱하는 두 축이 추억과 희망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추억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다. 과거까지로 국한된 기억을 억지로 늘릴 수는 없고 그렇기에 추억의 총량도 증가할 리 없다. 아마도 사진 속 우리는 천진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헤어짐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은 너무 잘 알지만, 어쩐지 우리만은 예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미련스러운 희망을 품었던 시간이었다. 좋은 추억이지만, 그 추억을 디딤돌 삼아 새로운 미래로 향하지는 않을 우리다. '업데이트가 안 돼'라는 말이 마음에 얹혔다. 미래가 부재할 우리. 그렇게 우리를 상실해버린 우리. 새로운 이야기 따위는 없을 우리. 그러니까, 정말로 끝나버린 우리. 새삼스러운 진실이 아리게 다가왔다.


    추억의 소용을 따져 물었다. 빛나던 시간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일에 어떤 효용이 있나 싶었다. 미래와는 전혀 상관없는 과거의 일들이 반짝반짝거리는 것에 의미라는 게 있을까. 미래와는 철저하게 단절되어버린 추억에는 대체 무슨 힘이 있을까. 추억으로만 그치는 추억들이 참 많다.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보이는 추억도 언젠가는 가장 밑에까지 스크롤이 내려가고 그렇게 지금까지의 삶을 촬영한 파노라마는 막을 내린다. 어떤 추억이냐에 따라 물론 다를 것이다. 여행 사진을 보면서 우린 다음 여행을 꿈꾸고, 참 행복했던 시간을 포착한 엉망인 동영상을 보면서 앞으로를 기약한다. 추억과 희망이 삶의 두 축이라는 말은, 이렇게 둘 사이의 소통과 교류를 전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래와는 전혀 무관한 추억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나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단적인 예로, 좋은 사람과 예쁜 시절을 보냈으니, 앞으로도 그런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억지로라도 잉태시켜야 하는 걸까. 그 시절 그 나이 그리고 그 사람은 더 이상 이 삶에 나타나지 않을 텐데, 그럼 그 희망은 대체 무엇이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력한 추억들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지만 쉬이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어떤 추억은 자꾸 꺼내어 볼 순 있지만, 그 위에 더 이상 축적될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더 이상의 생명이 없는 기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힘겹게 추억으로만 머무르는 추억이라도 있는 게 더 낫다는 편의 손을 들어주었다. 분명 슬프고 서글픈 일이다. 정말 많은 기억들 중 일부가 추억이 되는 것인데, 그 추억이 미래와는 무관한 그리고 오직 과거에만 머무르는 추억이라는 건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추억들이 있기에 우린 지난 단계의 삶을 긍정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성장의 기틀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당위지만 어쩔 수 없는 진실이다. 우린 자라야 한다. 덜 아프고, 더 무뎌지고, 또 덜 절망하기 위해 사람은 성장을 한다. 성장은 보통 괴로움이 치유되며 이루어진다. 하지만 아픔만 가득하다고 사람이 어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좋은 기억들, 그중에서도 추억은 한 사람이 지난 시절을 긍정하게 만든다. 너무도 지리멸렬한 한 개인의 역사에서 스스로가 긍정할 수 있는 페이지들이 있다는 건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며 왜곡되지 않은 성장으로의 열쇠다. 괴로움과 괴로움 사이에 밝게 기억되는 추억이 있다는 건, 다시 찾아올 또 다른 괴로움에도 한 사람이 무너지지 않게 돕는다. 이렇게 끝내 무너지지는 않았던 경험은 자연스레 한 사람의 생이 더 건강히 지탱될 수 있게 한다.


    더 이상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 총량이 정해져 있는 지난 추억조차도 무척이나 소중한 건 이 때문이다. 비록 나의 미래와 이어질 수 없는 추억들도 많겠지만, 한 가지 기억할 점은 모든 추억들이 미래를 위해서만 복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소용과 효용은 분명 중요한 미덕이다. 이 관점에서 재단한 추억뿐인 추억은 썩 볼품이 없다. 하지만 어떤 추억이 비록 끝나버린 이야기의 부산물이더라도, 빛났던 시절이 있었다는 건 한 사람이 자신의 지난 걸어온 길을 너무 미워만 하지 않도록 돕는다. 위에서처럼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는 인연과의 추억이어서 앞으로 펼쳐질 스스로의 미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추억 때문에 자랄 수 있었고 미래만큼이나 중요한 과거의 지난날들을 예쁘게 바라볼 수 있다. 추억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도 이어지면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추억으로서만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추억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사실 생각해보면 소중했던 한 사람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줄 수 있는 미래의 희망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상기했듯 그 시절, 그 사람, 그때 그 감정이 재연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추억을 통해서 한 사람과의 시간이 작은 온기가 되어 마음 안에 자리할 수는 있다. 이렇게 어떤 추억들은 마음 안의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삶을 버텨낼 수 있는 온도로 남는다.


    분명 추억은 과거로 국한된다. 그러니 추억의 총량 역시도 그에 따라 정해진다. 어떤 추억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이어지지만, 슬프지만 몇몇 추억은 추억으로만 그치며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이 자신의 생을 돌아보았을 때, 다시 뒤돌아본 스스로를 따뜻한 온기로 맞이해주는 건 이 추억들이다. 추억은 분명 어떤 측면에서는 무용하고 쓸모가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지난날을 따뜻하게 기억되게 해 주고, 때로는 그 추억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는 점에서, 추억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더 이상 업데이트가 안 되고 그래서 총량이 정해진 힘없는 추억이더라도, 마음 안에 품은 이 추억은 생의 여정을 한 발 짝 더 앞으로 디디도록 우릴 지탱할 수 있다. 그러니, 추억으로서만 아프게 남은 추억들에게도, 수고했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도 괜찮지 않을까. 설사 미래와 상관없는 추억일지라도, 그동안의 스스로를 구성하고 지금의 나를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온도일 테니.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했던 날들을 사랑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