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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emian Writer Jan 31. 2023

사랑했던 날들을 사랑해

    고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나는 두 번 정도의 풋사랑을 했다. 태어나 가족이 아닌 누구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해 본 것도 이때 즈음이었다. 엄연히 연애였지만, 우리가 당당할 수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고등학생의 연애를 환영할 분위기의 세상이 아니었다. 추궁과 질책에 대한 두려움은 종종 우리를 머뭇거리게 했다. 어렸던 연인들의 헤어짐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사람은 사랑으로부터 많은 걸 배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사람은 이별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고 이를 다음 사람에게 실천한다. 한 사람의 존재와 부재로 배우게 된 무언가를 정작 그 사람에게 줄 수 없다는 게 아이러니 아닌 아이러니다. 그러나 어쨌든 고등학생 때의 연애로 무언가를 배우기는 했으니, 나는 사랑에 조금은 자만한 상태로 스무 살을 맞이했다. 서로를 마음으로 아끼는 상대만 있으면 잘 사랑할 수 있을 거라 어리석게 믿었다. 나의 거대한 착각은 연애라는 행위에 반드시 사랑이 수반된다고 생각한 것에 있었다. 돌이켜 보면 고등학교 시절의 풋사랑은 사랑이 결여된 연애는 물론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랑으로 충만하지는 못했다. 사랑을 맘껏 자라게 할 시간과 공간적 여유가 모두 부족했다. 그때 내가 경험했던 건 연애였지 절절한 사랑이 아니었고, 사귐의 형식적 절차들에 대해서는 익숙했으나 사랑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조금은 예민한 사람임에도 사랑의 감각에 대해서도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좋아함과 사랑 사이에도 큰 간극이 있고, 실제 사랑을 느껴보기까지 내겐 조금만 더 시간이 필요했다.


    20대를 관통하며 몇 번의 연애를 했다. 20대 초반에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해준 사람을 만났다. 좋아함, 호감, 설렘 등 온갖 달콤한 말로도 표현하기에 부족했던 그 뜨거운 감정을 나는 '사랑'외에 다른 단어로 명명할 수 없었다. 정말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다는 건 생이 흔들릴 만한 경이였다. 나는 살아져서 살아있는 사람이다. 뜨겁게 살아감을 추구하는 것보다, 아직 끊이지 않은 호흡이라는 관성이야말로 내 삶을 견인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다. 하지만 사랑할 땐 달랐다. 내일이 기대가 됐던 시간이었다. 잠을 자려고 할 때면 빨리 다음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별일 없는 내일이 반짝일 거라 기대했던 건 생각해 보면 오직 사랑할 때뿐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사랑의 실존을 증거할 수 있다. 내가 사랑에 빠진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벅찬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름마저 이렇게 예쁠 수 있냐며 하루 종일 그 사람의 사진을 보기도 했다.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지난 시간들이 늘 궁금하고 조금씩 그 궁금증들이 해소되는 게 좋았다. 해사한 미소와 서글픈 울음 모두에게서부터 행복을 느꼈다. 기쁠 때나 아플 때나 함께라는 생각에 뭉클함이 피어올라서였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기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인생이라는 무대'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인생의 무대에서, 나만큼이나 중요한 배역을 지닌 사람이 나타났고 나의 무대는 어느덧 '우리의 무대'가 되었다. 그 놀라운 환상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행복이라는 게 세상에 분명 존재함을 직접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사랑과 행복을 날이 새도록 증거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사랑은 세상에 없다고 말한다면, 열변을 토하며 목청껏 사랑의 실존을 간증할 것처럼 사랑의 존재를 믿었다. 사랑은 분명 마음 안 너무나 크고 무거운 질량으로 자리하곤 했다. '우리의 무대'에서 한 사람이 이탈하기 전까지, 사랑은 늘 벅차고 아름다웠다. 누군가가 '우리'라는 이름으로부터 멀어지는 건, 그 큰 사랑이 마음 안에서 와장창 깨져버리는 것과 같았다. 사랑은 분명 존재하나, '영원한 사랑'의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모든 생물들에 정해진 끝이 있듯이, 사랑에도 각자마다의 수명이 있었다. 나는 사랑을 노력한다는 것이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조금 더 충만하게 만드는 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갖은 노력으로도 사랑의 유한하고 정해진 수명을 거스르기는 어렵다는 다소 어설픈 운명론을 믿기도 한다. 스무 살이 넘어 사랑을 알게 됐고, 그 사랑이 도무지 주워 담을 수도 없는 파편들로 남았을 때 얼마나 괴로울 수 있는지도 인지하게 되었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은 그저 고통이었다. 때론 폭음을 했고, 또 때로는 식음을 전폐했다. 멀쩡할 리 없는 마음이 너무 아파 가슴을 부여잡고 며칠을 울었던 적도 있다. '우리의 무대'에서 퇴장하는 그 사람을 보며 주저앉아 한참 눈물을 쏟아냈다. 아팠다. 슬프다,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내가 떠났든 누군가가 나를 떠났든, 이별은 언제나 아픔이었다. 더 이상 우리가 없는 '우리의 무대'를 바라보며 심한 허탈함과 아쉬움 그리고 공허함을 느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무언가를 하나둘씩 받아들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경험치를 쌓는 게 성장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성장통은 심했다. 이따위로 아플 거면 무엇 하러 사람은 성장을 해야 하냐고 속으로 외친 적도 많다.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아무는 상처를 보며, 사랑의 실패 혹은 부재만큼 비정하고 잔인한 일은 없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별들이 너무 아팠기에, 때론 나는 지난 시간을 부정하거나 마음속 쓰레기통에 욱여넣으려는 못난 짓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저 밉기만 했던 한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조금 들면서 나는 철없던 사고를 조금 수정할 수 있었다. 이별 후 느끼는 감정들은 힘듦과 슬픔, 괴로움과 자책 등이었다. 고통은 차라리 지난 사람과 시간을 향해 돌을 던지라고 부추겼다. 그러다가 조금 시간이 흘렀을 때, 마치 안개가 걷힌 것처럼 지난 사랑을 골똘히 바라볼 수 있었다. 미움과 미안함 등의 감정들이 조금 사라지자, 반짝 빛나고 있는 지난 시간이 보였다. 거기에 때론 반짝였고 때론 아팠던 우리가 있었다. 아린 마음으로 지난 페이지들을 돌이켜보았다. 그러면서 느낄 수 있었다. 사랑했던 시간은 어디 가지 않는다고. 그 시간은 그냥 그 자리에 멈춰있을 뿐이었다. 담백하게,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 이별 직후 미친 듯이 슬프고 힘들었던 순간에는 이를 제대로 볼 여유가 없었으나, 하나하나 추억을 읽고 만지며 나는 고마움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대부분의 사랑은 실패로 귀결된다. 물론 모든 이별들에 실패라는 딱지를 붙이기에는 부당한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별이 사랑의 성공일 수는 없다. 결말보다 중요한 건 사랑한 시간 그리고 이를 어떻게 간직할지 여부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지난 시간이 남긴 따스함은 마음 안 온기가 되었다. 사랑을 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따스함을 고이 간직하며 다음 사람에게 다시 열렬한 마음을 조금은 더 철든 방식으로 전달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를 깨닫기까지 내겐 참 많은 아픔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이를 조금이라도 느끼고 나니 나는 사랑을 간직하고 잘 마무리하는 일에 조금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는 상대뿐만 아니라, 우리가 나눈 시간에 대한 예의였다.


    사랑으로 나는 많이 자랐다. 사랑한 시간이 있어서 행복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이 끝남에 있어 내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그 상처가 언젠가 아주 조금씩 아물기는 한다는 것을 배웠으며, 이후에 애틋했던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는 일의 중요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20대 때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것도 사랑이었고, 사랑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껏 자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했음에 나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보다 더 성숙해진 지금의 내가 밉지 않다. 이제 지난 사랑들을 돌이켜 보며 나는 사랑했던 날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랑들을 부정하거나 원망만 하지 않고, 담담하게 추억하고 고마워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그리움은 전무하고 안부조차 물을 수 없는 사이가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나의 기억 안에서는 고마운 사람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사랑만큼 내게 큰 생채기를 준 무언가는 없었지만 사랑했기에 누군가를 조금 더 최선을 다하여 내가 아는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듯하다. 사랑했던 날들이 이제는 더 이상 모난 기억들이 아니다. 이제 삶의 한 챕터를 넘기는 시점에서, 지난 모든 시행착오와 어설픔이 다음 사랑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단 하나만 더 소망이 있다면, 우리가 나누었던 시간이 그 사람에게도 모질지 않게 남고 또 조금의 따뜻함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추운 겨울이다. 지금처럼 마음에도 추운 겨울이 찾아왔을 때, 부디 서로가 나눈 사랑이 작은 온기가 되어 얼어붙은 마음 안을 녹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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