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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emian Writer Dec 10. 2023

<운빨 로맨스>

내가 제 때 만난 소중한 연인

    우리는 오늘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랑해'를 나누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정말 별 것 아닌 계기들로 그때그때 발화되었다. 별일 없이도 맘껏 '사랑해'가 남발될 수 있는 사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 때 만난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게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난 들 '제 때'가 갖춰지지 않으면 서로의 순간들이 서로로 충만한 인연을 맘껏 누리기 어렵다. 최근 몇 년 간 나의 시간에서는 언제나 불안함과 초조함이 다른 감정들을 앞질렀다. 마음처럼 되는 일이 없었다. 스스로가 누군가의 미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20대 초반부터 나를 집어삼켰던 우울이란 괴물의 저주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팠고, 불안했고, 그럼에도 스스로를 미워했다. 우울은 모든 안 좋은 일들의 귀책사유를 다름 아닌 스스로에게 돌리도록 사고 회로를 설계하기에 참 나쁜 병이다. 무형의 법정에서 나는 언제나 스스로를 변호하기보다 되려 기소를 하는 쪽이었다. 삶이 동굴 같았다. 정말 긴 동굴에 빛 없이 갇혀있는 느낌을 오래도록 느껴야 했다. 약을 먹지 않고서는 단 조금도 잠에 들 수도 없었다. 평생을 이러고 살기에 나는 너무 어리지 않나,라는 억울함이 스칠 때도 많았다. 과연 내게도 안온한 햇살이 조금이라도 닿는 날이 있을지는 생각만으로도 요원했다.


    의식의 전환을 위해 작년 말부터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를 괴롭히거나 아프게 하고 있던 것들과의 물리적인 단절이 필요함을 역시 체감하게 되었다. 입사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3개월 정도의 휴직을 선택한 이유였다. 휴직을 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심각한 열패감에 빠져있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을까. 일은 원래 고되다. 밥벌이는 그래서 숭고하다. 모든 노동이 가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나만 왜 이리 엄살을 부리나 싶은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선택한 휴직이었는데, 이것도 못 버텼냐는 자괴감이 휴직을 하고도 유의미한 시간 동안 오래 이어졌다. 남들 다 하는 것도 못 버티면, 과연 내가 내 몫의 삶을 꾸릴 수는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생각은 생각을 낳았고,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괜찮은 척을 하기도 괴로웠다. 그때 다소 충동적으로 비행기 표를 구매하여 여행을 잠시 다녀왔다. 이 여행이 터닝 포인트였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떠나서야 내가 꽤 심각한 번 아웃을 함께 겪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의 피로도가 심했음을 인정했고, 그게 기질적으로 예민한 내게는 더 독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나를 하나하나씩 변호하기 시작했다. 학부생 시절에 쓴 글들을 봐도, 나는 학교 다님을 참 많이 힘들어했다. 그때 역시도 남들은 다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 다니는데 왜 혼자만 이런 지랄 맞은 감정들을 겪는지에 대해 한심함을 느꼈었다. 다른 사람들이 멀쩡히 직장을 다니는데 나만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이미 학부생 때부터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학교 다님을 꾸역꾸역 버텨낸 후에, 지옥과도 같았던 취준을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취업 준비 기간이 아주 길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간절했던 기업이든 아니든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오는 거절 메일들에 마음이 많이 다쳤던 것도 사실이었다. 서류에서 떨어지고, 서류를 건너면 인적성에서 떨어지며, 그 인적성 중 일부는 AI인적성이라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면접에서 떨어지면 그거대로 무척 아쉬웠고, 전형 단계 초반에서 탈락하면 내가 어딘가에서 일을 할 수는 있을지 여부에 대한 확신조차 내릴 수 없었다. 그러다가 지금 회사에서 두 달의 채용 연계형 인턴을 거쳤고, 낯선 팀에 들어가 2년 간 매일 엄청나게 많은 긴장을 한 채로 일했다. 지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음을 여행지에서야 깨달았다. 지친 내게 자꾸 억지로 소화를 강요하니 탈이 났던 상황이었다.

우리의 날들을 응원해

    스스로에 대해 인정을 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면서,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패배자나 낙오자가 아니라, 더 이상 힘을 낼 수 없던 상황이었음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주어진 순간순간에는 최선을 다했으나, 역량이 미치지 못했던 지점도 있었음을 겸허히 인정했다. 쉽지는 않은 인정이었다. 나는 이렇게나 무능력하나,라는 자괴감이 그 순간에도 들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바꿔야 했다. 삶을 무작정 꺼버릴 수 없으니, 나를 바꾸는 연습이라도 절실하게 필요했다. 언제까지 스스로를 모질게 기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상담과 여행의 도움을 받아, 나는 조금씩 조금씩 나를 돌아보고 이해하는 연습을 했다. 물론 아직도 이에 대해서는 초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연습조차 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하면 마음의 안정감은 확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좋은 건 여유가 생겼다. 조금의 여유지만, 어쨌든 소중한 여유다. 그렇게 조금의 여유를 힘겨이 발견했을 때, 지금의 연인이 나타났다. 밝게 웃음 짓는 사람이며, 함께 있는 시간을 환하게 비추는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아직 모자란 여유의 크기이기에 그 사람을 온전히 담을 수 없을 때도 있어서 가끔 서글프기도 하다. 그래도 최악은 벗어나서 만나게 됐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내가 품을 수 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삶이 마련해 준 이 사람과의 시공간의 거처가 감사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낸 시간은 적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긴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느끼는 절실함과 간절함이 꼭 물리적인 기간과만 비례하지는 않는다. 이 착하고 고마운 사람을, 내가 조금이라도 괜찮은 시기에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우리 둘은 <운빨 로맨스>라는 대학로 연극을 관람하고 왔다. 연극의 제목처럼, 지금의 이 행운 같은 사람에게 내게 주어진 운빨들 중 꽤 많은 녀석들이 투자되었음이 느껴질 때가 있다. 늘 비관이 낙관을 앞지르는 지랄맞고도 부정적인 성격으로 살아왔고 세상은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곱씹었는데, 이 사람에게만큼은 그런 불평을 할 수 없을 듯하다. 그저 고마운 사람이 그 고마움을 맘껏 음미할 수 있는 시기에 내 삶을 방문했다. 조금이라도 빨랐다면 나의 모자람과 어두움에 그 사람에게 그림자만 드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 사람의 밝은 모습이 한결같기를 바란다. 그 한결같음을 위해서 우리의 관계에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동시에 나를 돌보고 보살피는 일에도 아주 열심일 것이다. 나를 가꾸고 아껴서, 그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로서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넉넉한 품을 가지고 싶다. 내 많은 운빨이 모처럼 제대로 열심히 일을 해서 만나지게 된 지금의 사람이다. 이 벅차도록 커다란 행운을, 가능한 오래오래 지혜롭고 현명하게 지켜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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