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함 이후에 대한 상상력이 너무도 빈곤한 지금
별 거인 혹은 별 거 아닌 순간들이 모여 우리를 이룬다. 빼곡히 수놓아진 삶의 행로에 기쁨만 있는 건 아니다. 살아있다는 건 괴로움을 지나쳤거나 감내하는 중이라는 의미다. 각자만의 강도로 매일을 버티고 견딘다. 온전히 참아내야 할 것들로만 가득했던 하루가 있을 수도 있다. 그 하루가 빈번히 반복되게 되면 우린 서서히 좌절한다. 그럼에도 버텨내야 할 이유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때론 못된 무기력을 감당하는 유일한 동기일 수도 있다. 영화 <보이후드> 속 주인공의 엄마는, 대학 진학을 앞둔 주인공을 배웅하는 순간에 자신의 인생에 무언가 더 있을 줄 알았다며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 나이에 도달하지 못하여 차마 짐작하기 힘든 착잡함이었지만, "무언가 더 있을 줄 알았다"라는 말이 괜히 마음에 얹혔다. 이것을 이겨내면 또 저것을 견뎌내면 뭐라도 있겠지,라는 생각을 종종 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이지는 못한 바람이지만 그마저도 없는 삶은 견뎌낼 이유조차도 전무한 사막이니까. 애써 지독했던 여로의 끝에 당도한 그곳에 무엇도 없음을 발견하게 될 때, 도달하지 못했다면 찾아왔을 절망 대신 우리를 방문하는 건 허무와 공허다. 분명 목표치에 이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 성공의 결과물이, '고작' 이뿐이라는 사실은 지난날들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긴 시간을 견뎌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피어날 수밖에 없다.
치열했던 날들이 지나면 치열했다는 사실 하나만 남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담백한 진실이다. 삶에 투자하는 모든 인풋들이 마법 같은 함수를 거쳐 우리를 행복하게만 해주는 결과물로 출력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을 넣고 제품을 선택하면, 응당 그 가격만 취한 뒤 남은 돈은 거슬러 주고 제품을 건네는 자판기의 무심함이 차라리 나아 보일 때도 있다. 최소한 그 기계는 정직이라도 하다. 삶은 변동성이 너무 심한 주식장이다. 나의 지난날들이 어떤 결과물이 될 지에 대해서 너무나 미지수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내는 일상의 시간 대부분은 내일을 위한 디딤돌을 마련하는 데 동원된다. 그게 서글픈 습관이든 능동적 의식의 발로든, 우리 시선은 꽤 자주 미래를 향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쉽게 잊히는 사실이지만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으로 향한다. 삶은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종착지로의 일직선이다. 과거로도 돌아갈 수 있다면야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이 일방향적 선형적 구조 속에서 우리가 '준비'를 해야 할 건 '내일'이고, 그러니 '오늘'은 다음 날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 그러니 오늘을 치열히 살아내야 내일을 견뎌볼 수 있다. 어느덧 오늘이라 부를 내일이 되어도 우린 같은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영화 <보이후드> 주인공의 어머니도 주인공의 유년 시절부터 이런 날들을 수없이 지나왔을 테다. 그렇게 겨우 당도한 아들의 대학 진학 순간에, 어머니는 극도의 허무함을 순간 느꼈다.
그 영화의 어머니가 무엇을 기대하며 버텼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무언가 더 있을 줄 알았다"는 말로 미루어보아, 그 치열했던 시절을 버틴 후의 결괏값이 만족스럽진 않음을 알 수 있다. 무언가에 대한 기대감이 언제나 선명한 그림으로 남는 건 아니다. 우리는 때론 바보 같게도 무엇을 기대했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실망하고 좌절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태생적 모자람이기도 하다. 아주 구체적이지는 않은 어설픈 층위의 느낌이어도 우린 '희망'이라 부르거나 그렇게 불러대야만 삶을 버텨낼 수 있는 나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언가 더 있을 줄 알았다"는 회한은 비단 힘겹게 시간을 견딘 후 아들을 대학에 보낸 나이 든 어머니만 독점할 수 있는 구절은 아니다. 어떤 지향점에 드디어 도달했던 누군가라도 허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 치열할수록 공허함의 깊이는 클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빈번히 첫 번 째 목적지로 고려되는 '대학 진학' 후에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다소간의 당황스러움을 느끼고는 했다. 이게 끝이라고? 그 시간을 버텨 와서 맞이하게 된 결과물이 고작 이거라고? 거기다 시간이 몇 년 더 지나 먹고 살 방도를 마련하기 위한 취업 준비를 아프게 했다. 그렇게 들어간 회사에서도 나는 비슷한 저밋함을 느꼈다. 정말 괴로웠던 시간을 절실함 하나로 견뎠는데, 간절함이 현실로 치환된 값이 이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한동안 무력하게 만들었다. 빈곤한 상상력으로 치열히 살아낸 날들의 결과물은 열패감과 허무함 가득한 소모뿐이었다.
그건 아마, 내가 어떤 것의 물리적 상태에 이르려는 노력 외에 다른 상상을 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치열했던 건 사실이었다. 매 순간 노력만을 했냐면 그렇다는 응답을 쉽게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노력한 게 맞았고 그게 때론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건 이후의 삶을 상상한 게 아니라 피상적 지위 변동에 전력을 다했을 뿐이었다. 수험생일 때나 취업 준비생일 때나 내가 바란 건 '대학생'이나 '회사원'이 아니라, '합격'이었다. 그냥 그 상태를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래서 합격 후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현저히 부족했다. 옛날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할 건 이렇게 이후의 삶을 상상하는 일이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기에 그저 부질없는 후회일 뿐이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도 전혀 모르고 열심이었던 날들은 아니었다. 분명 난 현상을 바꾸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그 노력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것에서는 낙제점에 가깝게 나태했고 게을렀으며 무능했다. 이런 각박한 세상에서 그런 건 불필요한 낭만으로도 여겨지며, 당장 당면한 과제를 우선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게 효율적이거나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삶은 길다. 그 순간 이후의 공허함이 너무 길다면, 그에 대해서도 함께 보완하며 노력을 기울이는 게 오히려 더 큰 효율이라는 생각이다. 삶이 일방향적인 선형이라는 건 삶이 죽음으로 향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삶이 분절적일 수 없다는 걸 동시에 함의한다. 어떤 지위 변화 이후의 삶에 대해서 함께 상상하며 치열히 현재에 집중했어야, 이후의 시간들에서 나는 덜 괴로울 수 있었을 테다.
언젠가의 술자리였다. 앞으로의 삶을 떠올리는 이야기가 나왔다. 평범한 회사원이 됐으니 몇 년 더 이렇게 살다가, 몇 번은 진급하고 몇 번은 진급 누락되고, 그러다가 보직이 박탈되고 뒷방에서 눈칫밥을 조금 먹고 퇴직금 받고 퇴사를 하겠지. 그러던 중 결혼해서 어쩌다 애도 낳으면, 애 학교를 어딜 보내지 집은 언제 사지 전전긍긍하다가 세상이 돕고 하늘이 감복하면 집 하나를 사는 거겠지. 근데 이런 집값에 내 집 장만을 하려면 하늘이 오열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수로 울릴 수 있을까, 따위의 말들을 뱉어보았다. 내가 한 말을 돌이켜 곱씹어 보니, 나는 여전히 현상의 변동에만 집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치열할 미래의 순간들에 가끔씩의 기쁨과 환희가 아예 없지는 않을 걸 알고는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결혼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고, 진급을 하면 단순히 연봉 인상 외에 내 삶에 어떤 일들일 벌어질 지에 대해 상상하는 것에 여전히 무능하다. 다들 이렇게 사는지는 모르겠다. 나 외에 다른 이들에게도 이렇게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세상인지도 모르겠으며, 이렇게 살았던 누군가가 언젠가부터는 이후의 삶을 상상하게 되었는지도 더더욱 모르겠다. 상상할 여지가 점점 더 소거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삶을 살아있게 만들지를 못하고 있다. 내게 있어 생은 살아자기에 살아내고 있는 무언가고, 그 살아감이 치열할 수는 있지만 더없이 치열했던 시절 이후의 공허함을 예방하는 데는 무력하다. 진단이 됐다고 처방까지 매번 유효한 건 아니다. 꽤 오랜 시간 여전히 치열할 삶이 벌써부터 많이 외롭고 허무한 이유다.
치열했던 날들이 치열했다는 사실에만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치열했던 삶 이후가 너무 허무하지 만은 않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원래부터 그리 생생하지 못했던 삶이, 나날이 조금 더 메말라가는 게 다소 참혹하다. 어떤 상상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나는 아는 게 없다. 고작 이 나이에 모든 걸 알게되기를 바란 적 없지만, 아직 이 나이에도 정말 중요한 걸 모른 채 오늘도 살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