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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간직하고픈 기억의 요람

10년 조금 넘게 살았던 이곳에서의 이사를 하루 앞 둔 날 밤에

by 사랑의 천문학

이사를 한다. 담백하게 말해서 거주지를 옮긴다. 내일부터 나는 다른 방에서 잠을 자게 된다. 여행을 많이 다녔기에 낯선 곳에서 자는 게 그리 생경하진 않지만, 그 낯선 곳에 몸이 익어야 하는 연습만큼은 익숙하지 않다. 오다가다 자주 마주치겠지만 이 집을 다시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10년 조금 넘게 이곳에 머물렀다. 말이 10년이다. 처음 여기로 이사 왔을 때가, 내가 대학교 2학년이 되던 해 2월이었다. 그때 아직 생일이 채 지나지 않았던 내 나이는 만 19세였다. 꼬박 11년이 지나 다시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세상은 그 사이 더 나아진 구석이 있어, 이사 업체는 더 많은 편의를 제공하게 되었다. 대충 쌓아 놓으면 그대로 가져다준다는 말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챙기거나 살필 게 많다. 미처 챙기지 못한 게 남아 있는지를 찾는 작업도 지리할 뿐이다. 받아놓은 날은 빨리도 왔다. 이사 일자가 확정되고 오늘까지 꽤나 정신없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막상 이사 자체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여유가 있는 것 같다. 착각이다. 내일 일어나자마자 나는 바쁘게 이 집을 완전히 떠날 채비를 할 테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지금의 거주지에 머물러있지도 그렇다고 새 곳에 마음을 붙이지도 못한 진공의 어딘가를 떠도는 느낌이다. 그게 마냥 즐겁지는 않다.


이곳은 기억과 관련한 내 모든 날들의 공간이었다. 10년이었지만, 살아가며 두고두고 떠올릴 시간은 이곳에서의 기억 하나다. 미련하지만 미련이 많은 성격은 아니다. 비정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매정은 하다. 무엇보다 사람이 참 야박하게도 결과론적이다. 10대 시절 살았던 시간은 입시 결과에 종속적이다. 10대 초중반을 신도시에서 살았고, 특별하지도 않은 주제에 특수한 목적의 고등학교에 지원했고 보기 좋게 탈락했다. 나중에라도 기억의 용량이 너무 버거워진다면 가장 먼저 덜어내고 싶은 기억의 도시다. 즐거웠던 순간이야 있었겠지만 거기서 행복의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모든 게 입시에 달려 있었으니, 그 하찮았던 결과물이 다시 지난날들에 재 같은 검은 물감을 끼얹었다. 온통 흑색뿐인 날들로 기억되지만 부러 그에 빛을 비춰 보정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딴 날들은 그 따위 날들로 머물러도 아쉬움이 조금도 없는 곳이다. 거기서의 추억이 있긴 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무엇도 기억되지 않아도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반면 여기는 다르다. 물론 마냥 좋았다는 소리는 아니다. 행복했기도 했고, 무너지기도 했던 곳이다. 너무 아프게 무너져 아직 삶의 일부를 절고 있기도 한다. 통증의 여진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무척 행복한 날들도 있었다. 말 그대로 감정의 고저를 모두 오고 간 곳이었다. 10년을 살았으니 그랬을 수 있겠지만, 10년이 내 20대 전부여서 더욱 그렇다. 젊음을 여기에서 끙끙 앓았다.

꾀죄죄해진 내 방의 벽지

햇수로만 보면 아팠던 순간이 훨씬 길다. 이곳에서 나는 오래 버거워했다. 숨이 자주 조였다. 숨이, 아리게, 조였다. 내 작은 방이 어두운 관처럼 느껴졌던 시간도 있었다. 세상이 무섭고 사는 게 두려워 내 방에서 번번이 생과 숨바꼭질했다. 언젠가는 나아진다는 말에 대한 깊은 회의와 불신에 종종 패배할 뿐이었다. 그러나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을 이삭 줍기 하자면 그 바스라기 같은 조각들은 모두 여기에만 있다. 그러니 여긴 내 기억의 총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억하고픈 기억'들의 모든 것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팠던 기억들이라고 반드시 지워내고 싶은 건 아니다. 아팠던 시간을 아팠던 날들로만 간직할 수 있는 것도 행운 같은 시간이 나를 보듬어 준 덕분이다. 여기서 사랑도 했고 헤어짐에 신음했다. 무언가를 열렬히 상상했고 끝내 부서진 상상의 파편들에 생채기를 얻었다. 구원은 없었지만 더 내려가지는 않을 바닥을 발견하기도 했다. 서글프게도 세상은 가끔 나를 도왔고 자주 내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서 내 세상을 견뎠다. 남기고픈 기억으로 이곳을 남기는 건, 이번 이사마저 도피는 아니기에 가능한 호사다. 신도시에서 서울로 들어오며 나는 낯선 곳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보단 열패감을 벗어난다는 안도감을 더 크게 느꼈다. 어서 서둘러 어디로든 떠나고 싶던 그때와는 퍽 다른 느낌이다. 이사를 가는 마당에 눌러앉아있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부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호되게 채근하고 싶지도 않다. 이번 이사의 유일하게 산뜻한 지점이다.


그때도 청운의 꿈은 없었고, 청운 비슷한 구름마저 희미한 지금도 내겐 별다른 목표나 지향점이 없다. 목적지를 추구하다가 좌절됐을 때 아플 것에 대한 염려도 있지만, 그런 걸 가진다고 삶이 크게 달라질 게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만의 얘기고 최소한 내게는 지금껏 그랬다. 그게 나의 오래된 잘못일 수도 있겠지만 다만 하루씩 하루의 몫을 다하는 게 내 삶을 더 안온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이곳에 처음 올 때에 비해 '기억'이 생겼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만 '살면서 유효할 기억'이다. 이곳에서 살게되기 전까지의 기억 역시 보관은 되고 있지만 보존의 필요성은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지금처럼 살아는 가야 한다면, 여기서의 날들은 잘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가급적이면 소중하기까지 하면 좋겠다. 먼 훗날 나의 어린 날들에 대해서는 침묵하여도, 젊은 순간의 초입에 대해서는 푼수처럼 떠들 수 있도록 생생해도 괜찮을 것 같고 그 기억의 태동은 모두 여기서 이루어졌다. 원래 멀어지는 순간마다 평소에는 안 하던 정리에 열심이었던 나는 여기와의 작별도 수월히 할 테다. 사실 내일의 이사보다 당장 내 업무적으로 지연되고 있는 과제들이 더 큰 걱정이기도 한, 여전한 철부지의 자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젠가 나의 지난날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동감 있게 펼쳐질 풍경은 여기서의 시간일 테다. 무의미한 시간은 있었지만 그날들마저 헛되기만 하지는 않았다. 다른 의미의 안도감을 안고 나는 이곳과 이별하고 삶의 새 챕터를 맞이한다.


혼자서 떠난 최초의 여행의 결심도 이곳에 살면서 이루어졌다. 이후 다녔던 무수히 많은 여행들의 시작이기도 했다. 혼자 다니는 여행에서는 그리 할 일이 많지 않아, 나름대로의 의미를 사소한 것들에도 부여했다. 그러면서 혼자만의 작은 의식 같은 습관도 가졌는데, 한 도시를 떠날 때마다 역이나 공항에서 뒤를 돌아 오른손을 흔드는 것이었다. 이사를 함에도 그런 의식을 굳이 가져야 되나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든 곳과의 작별이니 나름의 인사를 건네는 게 이곳에 대한 나의 마땅한 도리인 것 같다. 행복했고 불행했다. 어쩌면 여기서의 모든 순간을 집약할 수 있는 두 상반된 의미의 단어들이다. 그러나 그게 모두 나를 구성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남김없이 짐을 쌌다. 그랬음에도 행여나 두고 가는 것들은 친절한 이삿짐 업체가 가져다줄 것이다. 다시 그럼에도 두고 간 게 있다면 다시 누군가가 버리기도 할 테다. 모든 게 비워진 이곳에 다시 누군가 들어와 그들만의 이야기를 써내기도 할 당연한 수순이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가엾은 사랑이 빈 집에 갇혔다며 읊조리던 한 시인이 생각나지만, 이곳에 내가 두고 가는 건 각별했던 내 20대와의 애증의 마음이다. 기뻤고 슬펐지만 어쨌든 순진하고 순수했던 이 시간의 기억이 내게 빛이 되지는 못해도 따뜻한 온기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런 소망으로 이제 다소간 저밋한 마음으로 오른손을 흔든다. 고마웠다고, 정말 그래도 고마웠다고. 또 부디 언젠가 마주칠 기억 안에서 언제나 늘 반갑기를 바란다고.


너무 뻔하고 의례적인 마무리지만, 상투적인 문구가 여전히 상투적인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안녕, 내 기억의 요람이자 간직하고픈 모든 기억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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