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넬 Christmas in Nell's Room 2025
밴드 넬은 내게 있어 종교다. 종교가 별 특별한 게 아니다. 그들의 음악과 활동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오랜 기간 보내는 중이다. 넬에 '입덕'하게 됐던 것은, 공연 중 그들의 멘트 덕분이었다. '비가 오면, 젖어야겠죠'라는 단순한 말이었다. 비가 오면, 정말, 젖어야 한다. 이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비가 오면 젖은 나를 탓하고 어떻게든 젖지 않을 방법을 미리 강구해내지 못했던 자신을 책망하고는 했다. 강박을 피했던 넬의 이야기는 어린 내게 큰 충격이었다. 넬의 이 말을 접하고 나는 이후의 시간들을 조금은 염세적이지만 그래도 그러려니 하려고 노력할 수 있게 되었다.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여전히 내 탓처럼만 느껴졌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은 나였다. 그럴 때 넬의 음악을 참 많이 들었다. 여기, 당신처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비겁하지만 위로가 되었다. 넬의 음악은 언젠가부터 그 아팠던 지난 시간을 '그립다'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며 정의하기도 했다. 그때 내가 얻은 건 희망이었다. 혹여나 나도, 넬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지금 아파하는 시간을 그리워하거나 애틋하게 떠올릴 수 있을까. 모르지만, 나처럼 이토록 아파하다가 저렇게 지난 시간을 그리워할 정도로 성장하는 세상 누군가가 있다면, 그게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넬의 발걸음이 부디 내가 걸어야 할 길을 먼저 떠난 선험자의 그것이기를 바랐다.
연말이라고 크게 다를 게 없다. 그건 연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연말에서 다음 연말까지의 시간은 다르다. 우린 각자 그 1년을 견딘다. 1년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당장 떠올려 보아도 올해 괴롭거나 아팠던 일들이 많았다. 나는 매년 연말 넬의 공연에 간다. 가서, 언제나 위로를 받는다. 딱히 좋아하는 캐럴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연말에 넬의 공연에 가는 게 어떻게 보면 나의 의식이기도 하다. 영화 <꿈의 제인>의 마지막 대사처럼, "죽지 않고 불행하게" 살아서, 넬의 공연에 다시 가는 것이다. 사실 2014년부터 시작하여 한 해만 군대 때문에 못 갔던 걸 제외하고는 매 년 넬의 연말 공연에 개근 중이다. 공연 자체에 연출이나 컨디션적인 측면에서 다소간의 기복은 있을 때도 있지만, 내게는 다시 이 공연을 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뭉클한 사실이다. 별다른 종교가 없는 내게, 넬의 공연은 내가 의지하고 위로받는 누군가가 주최하는 연말 가장 큰 집회고 미사다. 그러니 "오래오래 만나요, 불행한 얼굴로, 여기 뉴월드에서"라고 했던 영화 <꿈의 제인> 마무리처럼, 내게 있어 뉴월드는 바로 넬의 연말 공연인 셈이다. 공연이 좋으면 더욱 기분이 나아지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의 의식이 되어버린 넬의 공연은 공연 날짜가 다가오고, 지하철을 타고 공연장에 가고, 시작을 기다리다가 공연을 즐기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전체 여정의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충분한 위안이다. 1년 동안을 다시 살아내느라 고생했다는 토닥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곡이 나오고 어떤 무대가 연출될지보다 중요한 건, 내가 올해도 이 밴드의 공연에 참석한다는 사실이다. 내용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더 애틋할 때가 있다.
올해 공연은, 좋았다. 좋았다는 말 이외에 다른 언어로 이 공연에 대해 적확히 표현할 수 없는 게 다소 개탄스러우나, 단순한 '좋았다'가 모든 것일 때도 있다. <Slip Away> 앨범의 타이틀 곡이었던 '그리고, 남겨진 것들'로부터 시작하여 'Sober'와 'Sunshine'으로 공연은 포문을 열었다. 비가 오는 'Sober'와 반대의 'Sunshine'으로 이어지는 공연 연출이 무척 인상 깊었다. 두 곡과 관련해서 한 곡은 헤어짐의 상황에서, 또 한 곡은 삶이 모질 때 많이 듣고는 했었다. 그 기억이 떠올라 무릎을 움켜쥐며 곡을 들었다. 이후 'In Days Gone By'를 시작으로 일어나서 들을 수 있는 곡들이 이어졌다. '피터팬은 죽었다'는 무척 신나는 노래지만, 노래 뒷부분에 이르러서는 다소 울컥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괜찮아지고, 빛나고, 사랑받고, 웃을 수 있을 거니 계속 꿈을 꾸라는 가사가 와닿았다. 오랜 시간 괜찮지 않았고, 삶의 빛깔은 바랬으며, 사랑은 중요치 않았고 그래서 많이 울던 나였다. 노래를 들으며 기분은 행복한데, 이제는 뒤로 간 아팠던 기억이 문득 떠올라 잠시 입술을 질끈 물었다. 내게 있어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본 공연의 마지막 곡이었던 '안녕히 계세요'였다. 말했다시피 나는 넬의 연말 공연에 2014년부터 개근 중인데, 그중 딱 한 해 못 갔던 공연에서만 라이브로 연주됐던 곡이 '안녕히 계세요'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이 곡을 희망하고, 역시 안 됐다고 체념하는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영원히 못 들을 수 있겠다 싶었던 라이브였는데, 살아있으니 듣게 되었다. 어떻게든 버텨낸 간에 대한 더없는 보상이었다.
'안녕히 계세요'는 곡 자체로도 아픈 음악이지만, 이 노래에 감정을 의탁하고 펑펑 울던 어리고 여린 청춘의 기억 때문에 더욱 가슴 미어지는 노래이기도 하다. 조심스러운 추측이지만, 내가 이토록이나 곡에 공감할 수 있었다면, 이 곡을 쓸 당시 넬도 마냥 쉽지 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랬던 그 밴드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잘 활동하며 멋지게 공연하고 있다. 나의 롤모델이고, 내가 조금 과장하여 나의 종교라고 부르는 이유다. 한 사람에게 치유적인 믿음을 주며 지지를 받는 이들이라면, 다소간의 종교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넬이 그렇다. 공연 말미에 넬은 '오래 음악 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만납시다'와 같은 말들을 남겼다. 뻔한 이야기라면 뻔한 이야기다. 그러나 '안녕히 계세요'와 같은 음악을 만들었던 위태로웠던 이들이, 시간이 지나 '오래' 그리고 '다시'를 당연하게 얘기하는 존재가 된 것이 새삼 감동이 있었다. 그럼 된 거다. 삶이 유독 모난 시기가 있다. 그때는 생에 비가 내리는 날들이고, 젖는 수밖에 없다. 비가 내리는 데 우산이 없으면 어쩌겠나. 그런데 중요한 건, 세상에 비만 내리지는 않다는 거다. 비가 언젠가는 멈추고, 다시 날이 맑아질 수도 있다. 마치 이번 공연 연출에서 'Sober'에서 'Sunshine'으로 넘어가는 연출이 그랬듯 말이다. 그럼 우린 젖은 옷을 말리고, 약간의 감기 기운과 콜록거림은 있겠지만 몸을 따스히 지킬 수 있다. 그렇게 살면 된다. 생은 너무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함수지만, 어쨌든 '그래도 살면 된다'는 단순한 정답으로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나갈 수 있다. 살아서 '안녕히 계세요' 라이브도 들었고, 그들이 '오래'와 '다시'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걸 보며 위로도 얻었다. 맘 같지 않은 생이, 가끔은 선물을 준다.
언젠가의 연말 콘서트 다음에는 눈이 내렸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밖이 춥긴 했지만 눈까지 내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마지막 곡 '12 Seconds'에서 쏟아지는 하얀 컨패티들 덕분에, 함박눈을 맞은 기분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공연을 곱씹었다. 공연 초반에 연출 쪽에서 작은 실수가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익숙해지면 안 돼요'라는 말을 보컬 김종완이 반복했다. 생각해 보니 그게 그냥 웃고만 넘길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느끼던 아픔과 괴로움도 익숙해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를 위로하지 못하던 시간을 당연하다 생각하면 안 됐다. '익숙해짐'은 일종의 버릇이고 우울도 슬픔도 그 안에서 재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나는 한 해를 별일 없다면 살아갈 테다. 내년에도 별 일이 없다면 넬은 연말 공연을 주최할 것이고 나는 그 자리에 있을 예정이다. 이 사실에도, 익숙해지면 안 된다. 1년을 치열하게 버텨 도달한 다음 연말이다. 넬의 공연을 참석하기 시작하며, 나의 1년은 내 생일부터 다음 생일이 아니라, 넬의 공연부터 다음 넬의 공연까지가 되었다. 언젠가 넬의 공연이 없는 연말도 분명 찾아올 수 있다. 세상 모든 것들은 유한하니까, 어떤 이유로든 내가 소중하다 생각한 것들을 지켜낼 수 없는 상황은 찾아올 수 있으니까. 그리고 거기엔 넬도 예외가 아닐 것이니까. 다만 넬만큼은 오래 만나고 싶다. 가장 힘든 순간 가장 큰 위로가 됐던 밴드고, 그 밴드의 1년 활동의 하이라이트 같은 연말 공연에 오래도록 참석하고 싶은 바람이다. 거기서 나의 1년과 지난 시간을 떠올리고, 함께 소리 지르고 환호하고 싶은 마음이다.
절망이 내게 너무 모질 때, 넬의 음악은 그 절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거고 다만 네게 불행하게도 방문하여 너를 아프게 하는 중이라는 위로를 주었다. 세상에 절망만 가득하다고 느꼈을 때, 넬은 그래도 그 시간을 견디다 보면 조금은 그날들을 그리워하기도 하며 추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었다. 넬의 연말 공연은 그들의 음악으로 건네는 위로를 가장 깊이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다. 넬은 음악과 공연으로 돈을 버는 직업인들이고, 나는 음악과 공연에 돈을 쓰는 소비자다. 넬은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넬에 깊은 유대 관계를 느낀다. 그들의 작품들이 단순히 내가 돈을 써야 할 건조한 '상품'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넬이 넬이라서 고맙다. 자신들이 좋아서 하는 음악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무의미하다고 공연에서 넬은 이야기하며 관객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다. 넬이 넬의 음악을 해주고 공연을 해주어, 덕분에 삶이 조금 더 견딜만해졌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어려운 삶이지만, 평소보다 조금 특별한 하루가 긴 생을 버티게 할 때가 있다. 넬의 연말 공연의 기억으로, 나는 아마 당분간 따뜻하고 충만하게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올해도, 참 많이 고마웠습니다. "죽지 않고, 불행한 얼굴로, 또 만나요 여기 '뉴월드'에서"라는 <꿈의 제인> 대사를 차용하며 글을 마치고 싶다. "죽지 않고, 덜 불행한 얼굴로, 다시 또 만나면 좋겠어요. 여기 넬의 공연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