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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emian Writer Mar 09. 2023

에피톤 프로젝트, '우리의 음악'

우리의 음악을 잊지는 말아요

    운 좋게, 이건 정말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니, 다시 한 번, 정말 운 좋게, 나는 고등학생 때 연애를 했다. 중학교 때 잠시 다녔던 수학 학원에서 만난 동갑내기 여자애였다. 첫 연애는 모든 게 서툴렀고, 성급했으며, 그래서 미련했다. 어쨌든 뭘 몰라도 한참을 몰랐던 그때의 연애였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징그러움 가득한 애칭으로 부르는 걸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여자친구는 내게 '서방'이란 표현을 썼다. 나는 그 아이를 '여보' 또는 '자기'라고 불렀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면 그 정도의 징그러움 쯤은 풋풋한 싱그러움으로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린 각자 인생의 가장 바깥부터 삶의 내밀한 비밀들까지 조금씩 알아나갔고, 겨울비가 옷을 적시는 느린 속도로 서로를 닮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귀여움의 영역에서 권고 사직 당해버린 내 인생이, 그녀의 이런저런 말투를 따라하며 애교학 개론을 나도 모르게 수강하고 있었다. 서툴렀고, 성급했으며, 그래서 미련했던 연애답게, 우린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누지는 못했다. 연애가 마무리 되고, 슬프다고도 후련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아마 허탈함이었을 그런 감정으로 그 아이가 남겨 줬던 편지들을 읽다가, 잠시 울컥하기도 했다. 짧은 연애 기간에 비해서는 꽤 많은 손편지를 그 사람으로부터 받았다.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말투와 글씨를 독점적으로 알 수 있던 시간이 그렇게 끝나버렸다는 게 퍽 슬펐다.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말투와 글씨에 관한 명징한 기억을 남기는 게 연애고, 또 헤어짐이라는 걸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지만, 사실 나는 어마어마한 악필이다. 올림픽에 악필 종목이 있다면, 손 쉽게 금메달을 따서 기꺼이 국위선양을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랬다면 병역도 면제 받고 서로가 참 좋았을 텐데. 학창 시절부터 나의 필기를 누군가에게 빌려주는 걸 한 번도 꺼려한 적 없었고, 그게 그렇게 아깝지도 않았으나, 정작 내게서 공책을 가져갔던 친구들로부터는 도무지 못 알아 보겠다는 악평만을 듣고 노트를 돌려 받았다. 사실 저 정도면 매우 점잖은 반응이었다. 어떤 친구는 이게 한글이냐, 라고 분노한 적 있었다. 굉장히 과학적이고도 정교하게 설계된 표음 문자를 쓰는 국가에서 상형 문자 비슷한 필기를 '그려' 넣었으니,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지긴 했다. 그래도 뭐, 어차피 걔들 보라고 적은 것도 아니니, 나만 알아보면 됐다 싶어 글씨를 굳이 교정할 필요성은 못 느꼈다. 물론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나 조차도 못 알아 본 글씨가 있기도 했다. 수능의 아랍어 영역을 공부할 때였는데, 무엇이 아랍어고 무엇이 한글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항상 내가 무엇을 적었는지 정도쯤은 알아볼 수 있었고,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도 기가 막힌 악필로 남아 있다. 대학 공부가 가장 좋았던 건, 물론 솔직히 대학에 와서 공부를 한 기억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가끔 어쩌다라도 억지로 공부를 하긴 했는데, 그때마다 굳이 직접 손으로 필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스무 살을 넘어서는 은행 볼 일 등을 빼놓고는 손에 펜을 잡을 일 조차 없었다.

    그러다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내 한심한 글씨체를 상대에게 자백해야 했다. 손 편지를 써댔기 때문이었다. 내 애정의 척도는 연애 기간 동안 '집필'했던 손편지의 총량과 정비례한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편지지를 가득 채워야 하는 부담감은, 어쩌다 대학 시험에서 작성해야 했던 서술형 문제의 답안지를 볼 때 만큼이나 막막할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의 악필이 '뾰록'나지 않도록 온갖 정성과 성실함을 기울이다가, 곧 손목에 피로가 찾아오고, 또 되도 않은 말들로 힘겹게 문장들을 쥐어 짜내다보면, 악필의 유령이 마침내 봉인 해제 되어 광활한 편지지의 이 곳 저 곳을 뛰어 다니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나는 한결같이 아랍어 같은 글씨를 쓰는 사람이었고, 손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내 글씨를 놀려댔다. 워낙 많이 받은 지적이라 새로울 건 없었으나, 그래도 애인에게 듣는 핀잔은 다소 자존심이 상했다.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다고 글씨를 추가적으로 더 연습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다만, 가급적이면 손 편지를 쓰는 일은 피하고 살았다. 손으로 편지를 쓴다는 건 인생에서의 중대한 결심들 중 하나였다. 그리도 거창하게 쓰인 손 편지를 받은 여자친구가 킥킥 웃으면서도 흐뭇한 표정으로 끝까지 편지를 읽고 난 다음에 내게 지어준 사랑스러운 미소만큼은 정말 좋았고, 그 보람을 동력 삼아 다른 악필의 손편지를 또 다시 힘겨이 써냈다. 아마 그 사람들에게 나는 글씨를 참 못 썼던 남자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살다보니 악필이 내 연애의 시그니쳐 브랜드가 되고 말았다. 상대방의 정갈한 글씨체들과는 더욱 대조됐다. 평소에 손으로는 글을 거의 쓰지 않았기에, 수업의 조교님이나 은행 창구 직원 등을 제외하고, 여자친구 이외의 사람이 내 글씨를 알 리는 만무했다. 참 못난 글씨체가 상대에게 익숙하게 느껴질 수록, 우린 더욱 깊고도 많은 걸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말투와 글씨를 알아 간다는 건,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던 한 사람의 삶이 통째로 방문하는 것과 같았다. 대부분의 경우, 그건 경이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아주 어릴 적 동생들과 장난을 치다가 부모님에게 혼난 이야기,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겪었던 아주 사소하고도 미묘한 다툼, 좋아하는 책과 영화, 그리고 이 모든 걸 말 할 때 목도할 수 있던 그 사람의 간질거리는 사랑스러움으로, 우리가 나누던 시간과 그 안에서 성장하던 내 삶은 훨씬 풍요롭고 생생한 모습을 띄게 되었다. 그 사람이 좋아하던 영화와 음악을 보고 들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의 어린 날이 궁금해졌고, 오직 그 사람만이 갖는 말투와 글씨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난 그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으며, 우린 훨씬 더 가까워졌다. 사랑이 무엇인지 적확히 정의내릴 수는 없겠으나, 어쨌든 그 덕에 다가오는 내일이 두렵지 않았고, 살아내야 하는 오늘이 지겹지 않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렇기에 그 사람이 궁금해지며, 조금씩 그 호기심의 답을 알아내는 놀라움과 즐거움은, 거듭된 이별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는 지리멸렬한 회로를 반복하고 마는 이유들 중 하나였다. 자신을 잉태하고 기른 부모조차도 알지 못하는 가장 부끄럽고도 내밀한 이야기들을 서로에게 건네며, 이윽고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어떤 이유로든 그 인연이 끝날 때 즈음에 다다라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별의 언어와 상처들을 나누고, 그래서 헤어짐의 슬픔과 아쉬움에 폭음을 하다가, 소화되지 않은 매스꺼움을 남은 사랑과 함께 게워낸 후, 그 토사물을 바라보며 두 번 다시는 사랑 같은 건 안 하겠다고 비장하게 결심했다가도, 이내 다시 사랑을 찬미하는 멍청함을 거듭하는 건, 확실히 의지나 이성보다는 마음의 영역이었다.


    사실 이 글은 2012년에 발표된 에피톤 프로젝트의 정규 2집 앨범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에 수록되어 있는 '우리의 음악'이라는 노래를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듣고,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는 여정에 대해 생각하다 쓰게 되었다. 노래의 후렴구에는 '그대여 사랑을 미워하진 마'라는 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지만, 만약에 우리가 나눈 시간이 너무 아프지는 않았다면, 그래서 사랑이 됐다면, 따스했고, 포근했고, 때로는 안쓰러웠던 사랑의 모습을 너무 타박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그런 바람을 담았다. 다음 사랑이 서로에게 언제, 어떻게, 또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 지는 모르겠으나, 각자의 아픔이나 쓰린 기억때문에 사랑 자체를 삶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못 한 놈으로 인식하지 만은 않기를 소망한다. 그 사랑으로 새로이 시작될 서로의 계절 역시 충분히 따뜻하기를 바란다. 삐뚤빼뚤하고도 못생긴 나의 글씨에도 예쁜 마음으로 웃어주었던 당신의 사랑스러움이, 그래서 항상 나를 궁금하게 했고, 또 가끔은 닮아가기까지 했던 당신의 모습이, 더 이상 서투르거나, 성급하거나, 그래서 미련하지는 않은 따뜻함 안에서, 꼭 안녕할 수 있다면 좋겠다. 어리고, 모자라고, 또 부족했던 건 사랑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었으니, 이제는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역시 다른 사랑으로 충만한 오늘을 누리고, 또 그런 내일을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 충분히 사랑하고, 또 그만큼 사랑받으며 부디 잘 살라는 이야기다. 다만 하나 더 욕심을 내자면, 이제는 우리 두 사람의 시간이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각자의 마음 안에 자리할 수 있기를. 우리의 음악을 그렇게 너무 쉽게 잊지는 말아주기를. 멀리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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