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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emian Writer May 01. 2023

로코베리, '너에게 난 무얼까'

마음을 참아내는 일은 참 슬퍼요

    나의 소중한 친구인 당신에게,


    당신은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냈나요? 아니면, 오늘은 당신에게 어떤 순간들이었고 의미였나요? 꽤 오래도록 당신의 시간이 궁금했지만, 오늘은 특히 더 묻고 싶은 날이었네요. 아마도 어제 저녁 우리가 나눈 대화 때문이겠죠. 어젯밤, 나는 당신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가 되었는지를 털어놓았어요. 털어놓았다는 말보다 더 적확한 표현은 없을 것 같네요. '고백'이라고 하기에는 전혀 계획적이지 않았으니까요. 너무 커져버린 진심을 저는 어찌할 수 없었어요. 참고 참다가 이내 말을 할 수밖에 없어지는 순간의 무력한 느낌을 당신이 아실지 모르겠네요. 당신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행위가 제게 얼마만큼의 실망을 야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계산할 틈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었음에도,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참을성이 증발해버리고는 해요. 어제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많이 놀라셨을 것 같고, 그에 대해 미리 사려 깊게 배려해드리지 못해서 많이 미안합니다. 다만 그 정도로 당시의 저는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해 주면 좋겠어요. 비록 제 안의 말들을 저조차 참을 수 없어 내뱉은 이기적인 언어들이었지만요.


    저는 기적을 믿지 않아요. 그러나 모순되게도 가끔은 기적의 환희를 바랄 때도 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유의미한 존재가 되는 일은 기적에 가깝죠. 안타깝게도 그리고 조금 원망스럽게도, 이번에는 기적이 제 편이 아니었어요. 참 세상에 서운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기적이 제 편이 아니었음에 조금 토라지는 투정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저울추가 어디로 얼마나 기울었는지를 알게 된 지 다음날인 오늘, 나의 하루는 참 특별할 게 없었어요. 그저 무탈한 날이었어요, 감사하게도요. 저는 무탈함과 무사함을 좋아해요. 행복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게 무척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을 기원하거나 기대하지는 않아요. 그저, 불행하지 않은 정도만 되어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종종 찾아오는 불행에는 밑바닥이 없더군요. 인간은 한없이 불행에 침전될 뿐입니다. 불행에도 밀물과 썰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불행의 파도가 덮쳐오는 순간에는 뭘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그 속에서 허우적 댈 뿐이죠. 불행으로부터는 벗어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 불행이 잠잠해지고 썰물처럼 도망을 가 우리가 겨우 일어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온몸이 다 젖은, 우스운 모습으로요. 어제의 제가 조금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니 민망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당신은 나를 참 좋은 친구라고 말했죠. 정말 고마워요. 누군가에게 제가 좋은 친구라는 건 꽤나 감사하고 즐거운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아주 잘못 살진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까요. 물론 당신도 제게 좋은 친구였고, 지금도 그래요. 누차 얘기했지만, 당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은 참 멋지고 예쁘며 늘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진심이에요. 생각해 보면 당신과 제가 지금처럼 친구가 된 데에 서로의 큰 노력이 있었던 건 아니었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두 사람이 자주 만나고 연락을 나누었을 뿐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친한 사이게 된 것이, 서로가 애써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제부터 나는 당신께 '여전히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마음을 다독이고 달래야 하죠. 커지는 욕심을 애써 눌러야 하는 순간도 있을 겁니다. 부질없는 원망으로 슬퍼하지 않게 나를 아끼고 격려해야 해요.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정말 오랜만에 느낀 감정이었거든요. 소중한 누군가에게, 친구 이상의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그 '중요한 사람'을 두 글자로 연인이라고 하죠. 맞아요, 저는 당신의 연인이 되고 싶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 마음을 체념하고 다시 좋은 친구로만 남으려고 애쓰는 게 쉽진 않겠지만, 그 노력의 여정이 성공적이기를 바라요. 당신을 오래 보고 싶거든요.


    백아라는 싱어송라이터가 있습니다. '테두리'라는 애틋한 곡을 만들고 부른 아티스트입니다. 이 서글픈 노래를 아시는지는 모르겠네요. '나 비록 그대의 사랑이 될 순 없지만/감히 그대 없는 세상을 떠올리느니/사랑이 아니길' 이라는 가사를 머금은 노래예요. 원래도 참 좋아하는 곡이었는데, 요즘 이 구절이 자꾸 생각나고는 했어요. 당신 마음의 성 앞으로 아주 조금씩 다가가 마침내 문을 두드리게 되었죠. 매몰차진 않았지만 분명해서 고마웠던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울적해진 제 마음은 다시 왔던 길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에요.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저는 당신의 사랑이 되지는 못했지만, 당신을 마음에 품고 있으며 불행하지 않았고, 되려 가끔은 행복한 꿈을 꾸기도 하였거든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에요. 주로 어둠만이 가득한 한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밝힐 수 있는 특별함을 갖추었죠. 그래서 생각해요. 당신의 존재에 감사합니다. 의례적인 말이 아니에요. 누군가의 마음에 빛이 되었던 당신이 없었다면 제게 있어 최근의 세상은 그저 무채색이었을 겁니다. 당신의 연인이 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당신을 보고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마워요. 다시 좋은 친구가 되러 가는 길에 마음이 다치거나 아플 때도 있겠지만, 잘 이겨내 볼게요. 그건 마음을 무작정 털어놓아버린 제가 감당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주고 싶은 게 참 많았어요. 든든한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고, 당신을 웃게 하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당신이 참 소중한 존재라는 걸 늘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당신이 만약 세상에 누가 당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저는 지금도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들 자신이 있습니다. 당신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저는 기꺼이 그 노력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함께 하고픈 일들도 이것저것 많이 생각했는데요. 이젠 다 부질없는 상상들이 되었죠. 무엇보다, '여전히 좋은 친구'가 되는 최선 같은 건 결코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으니까요. 또 우린 어른이잖아요. 자신의 말과 행동에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죠. 저는 제 몫의 책임을 다해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쓸게요. 날이 풀리면 같이 야구를 보러 가고, 술을 가끔 마시고, 서로의 고민을 나눠요. 지금껏 늘 그랬던 것처럼요. 행여라도 제가 조금 어색해 보여도, '여전한 좋은 친구'가 되는 연습을 게을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꽤 오래 당신 생각을 했고, 쉽게 잠을 못 이룬 날들도 있었어요. 누군가가 당신을 염원하고 소망할 정도로, 당신은 귀하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어요. 이 마음만큼은 당신께 오래 남아있을 수 있기를 소원해요. 당신이 당신이어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비록 외로운 짝사랑이었지만요.


    그럼, 안녕. 나의 여전히 소중한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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