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hemian Writer Jan 31. 2023

넬, 'Sober'

서로의 기억에서 잠시만 더 지내요

    생각해 보면 연인의 뒷모습을 본 적은 잘 없었다. 늘 옆에 나란히 걷거나, 걸음이 조금 빠른 내가 약간의 보폭 차이로 길을 다니고는 했으니까. 항상 옆에서 나란히 남은 삶의 길을 걸어갈 줄 알았던 우리였지만, 대부분의 연인들의 겪는 헤어짐 앞에 우리도 속수무책 했다. 마지막 날 돌아서는 옛 연인을 보며, 새삼스레 저 사람의 뒷모습은 저렇다는 걸 느꼈다. 흐느낌이 느껴지는 뒷모습이었다. 이 간단한 것도 몰랐는데, 모든 걸 다 안다고 착각했던 것에 부끄러움이 사무치게 밀려왔다. 미숙하고 모자랐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더 이상 붙잡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젠 내가 관여할 여지조차 없는 인생을 저 사람은 살겠지만, 부디 세상이 너무 모질지 않기를 함께 바랐다. 물론 언젠가는 머릿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리려고 이를 악물고 여기저기 치우고 그랬겠지만, 그마저도 다시 그 사람이 생각이 나서 멍하니 선 채 손에 쥐고 있던 뾰족한 우리의 조각이란 파편을 꼭 쥐고서 계속 눈물이 나온 적도 있다. 내 삶에 잠시 머물렀던 그 사람은 떠났지만, 기억 속에서의 그 사람은 아직 너무나 선명했다. 그러다가,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의 기억이 머리에서 아예 소멸되는 게 옳은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래서 비록 고통스럽겠지만, 나는 아팠던 사랑일수록 더 기억해내려고 한다.


    넬의 'Sober'는 지난 사랑을 기억해달라고, 또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는 음악이다. 한때, '그래서 어차피 다시 잘 될 일도 없는데 뭣 하러 그날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지' 묻는 누군가도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지점이라 오래 고민했다. 우린 다시 볼 수 없는 사이.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비를 맞겠지만 젖은 서로를 따스히 안을 수는 없는 관계. 그러니까 말하자면, 서로의 안부조차 물을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 쉽게 잊지 못하는 것과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 사람과 함께한 날들은 쉽게 잊히지 않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진 나의 몫이고, 상대에게도 우리를 기억해 주고 떠올려주기를 바라는 'Sober'의 내용은 어떻게 보면 조금 무력하고 이기적인 마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 마음도 통제가 잘 안되는데, 상대방에게도 그런 짐을 주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에서였다. 오히려 연인에게는 되려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소중했다면, 우리가 나눈 시간이 행복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의 축복이었다면, 모질지 않은 기억이 마음 안에서 따스함이 되어 삶의 겨울을 견뎌낼 수 있기를 바라는 진심이다. 사랑이 끝나는 건, 누군가가 이별을 얘기하고 다른 누군가는 이에 동의하여 같이 카페 의자를 집어놓고 나올 때라고 생각이 되지만, 난 이후의 애도 과정까지도 이별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온갖 익숙함을 맨정신으로 봐야 할 때, 술을 마실 때, 그리고 그 사람이 그토록 잔소리하던 습관들을 무심코 하고 있을 때, 이별은 끊임없이 지속된다.

    넬의 'Sober'에는 '사랑보단 이별에 더 능숙' 그리고 '웃음보단 눈물에 더 익숙'했던 '우리'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 부분을 듣게 되면 괜한 시큰함을 느낀다. 이별에 더 능숙했다는 가사가 아프다. 사랑의 끝은 이것이 아플 줄 너무 잘 아는데도 삼켜내야 한다. 이걸 '능숙'하다고 표현해 낸 화자는 아마 한 두 번의 연애를 한 게 아니지만 지금의 이 사랑에는 무척이나 진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Sober'에는 '우리를 잊지 말아요' '우릴 기억해 줘요'라는 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별의 여정이란, 멀어지고 또 멀어져 사랑이란 감정과 기억이 서로에게 일말도 남지 않게 되는 곳까지의 걸어감이다. 둘의 물리적인 관계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기억한다면 같은 기억과 꿈 안에서 잠깐이라도 재회할 수 있는 시간이라도 생길 테다. 그러니 '우릴 기억해 줘요'라는 가사는, 너무 빨리 이 세상에서 '우리'라는 이름을 지우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청일 수도 있다. 대부분이 그렇듯, 나 역시 사랑을 할 때 가장 빛나는 사람이다. 나같이 미래와 내일에 대해 아무런 기대치가 없는 사람에게, 사랑은 내일을 꿈꾸게 한다. 나를 더 열심히 살게 하고, 평소에는 느끼기 어려운 행복감도 선물해 준다. 그런 소중했던 인연을 공부하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우리가 서로의 기억 속에 조금 더 남길 바라는 욕심도 있다. 아마 'Sober'의 화자 역시, 서로가 그래도 같은 꿈이라도 꾸며, 꿈속에서라도 이별 없는 세상을 그 사람과 함께 맞이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때 그렇게나 춥던 날. 참 쓸데없는 얘기들로 대화를 채우고, 역시 함께 장난을 치며 놀았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헤어짐은 힘들다. 헤어짐은, 앞으로 겪게 될 모든 이별들 중에서의 가장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버릴 건 버리고, 치울 건 치우고, 간직할 건 간직하기 위해 주섬주섬 정리를 하다 울었던 적도 많다. 요즘 날이 많이 춥다. 이게 겨울인가,라는 마음이 어느덧, 이게 맞나,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추위를 많이 타던 사람이 오늘은 옷을 제대로 입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런 추운 날에 우리가 나눈 기억이 따뜻하게 간직되어서 꽁꽁 언 마음 안 정도는 녹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시간이 그 사람의 시간을 만나,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찬란함을 과분하게 누렸다. 서로의 접점에서 참 많이 행복했으며, 이제 다시 나아가던 방향으로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젠 다시 남이 되었으니. 아마도 이런 말투가 더 어울릴 것이다. '그때의 우린 이제 안녕이겠죠. 그러나 너무 일찍 안녕을 말하지는 않기를 바라요' 당신 역시 나와 사랑을 충분히 애도해 주기를. 그래서 '우리'라는 이름의 삶이 조금은 더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요. '안녕'.

매거진의 이전글 넬, <Dance in the Rai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