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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emian Writer May 16. 2023

<멜로가 체질>

힘들어, 안아줘, 그냥 안아줘

"나 힘들어, 안아줘. 너네한테 하는 얘기야."


몇 년 전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나온 은정의 대사다. 스스로의 아픔을 잔인하도록 아프게 마주한 은정은, 거실에 있던 친구들과 동생에게 자신이 힘들다고, 그러니 안아달라고 용기내어 토로한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 없고, 힘든 사람들에게 나의 힘듦까지 전가하기 싫어서, 남들도 이미 충분히 다 아픈 거 유난떨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모질게 굴며 지낸 시간이 꽤 길었다. 

뭐랄까. 나의 아픔과 힘듦이 아주 빼곡하게 담긴 무형의 일기장에 자물쇠를 덕지덕지 걸어놓은 느낌이기도 했다.


남들에게 결코 보여주고 싶진 않지만 누구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는 느낌이랄까.

나 좀 봐달라고, 여기 이렇게 치렁치렁 거추장스럽게 놓인 이 일기장 좀 열어주라고, 뭐 그런 소리 없는 외침이 이어지던 날들이었다.


당연히 약도 먹는 중이고, 또 결국 고집을 꺾고 상담도 다시 받게 됐다.

돈을 지불하면 그래도 제값은 하는 정도의 직업윤리를 가진 의사와 상담사 덕에, 아픔이 그래도 경감되는 날이 다행히 있었다.

그게 꽤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 게 문제지만.


그러다가 얼마 전, 가깝다고 생각했던 친척으로부터 젊은 애가 왜 이렇게 치열하게 살지 않느냐는 얘길 얼핏 들었다.

발전하고 정진하는 거 좋지. 나는 가뜩이나 야망이나 포부도 크지 않으니, 치열하지 않아보이는 내 삶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 것도 틀린 건 아니다.

근데 좀 서운했다. 죽을 힘을 다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이 세상에서 생존하고 잔존하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으니까.

가시적인 성과 없는 노력은 왜 꼭 이렇게 종종 치열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가기도 하다.


나도 노력 중이다. 분명한 진실이다. 나도 내 삶이 너무 쉽게 무너지지는 않게 경계하며 살고 있다. 

다시 일어서는 게 힘들다는 걸 알아서, 넘어지는 것 자체를 조심하고는 한다.

나의 지난 발자국들은 다 열심히 또 조심히 걸어낸 걸음들이다.

어떤 기준에서는 치열하지 못해보이겠지만, 사실 어쩌면 그 이상으로 아등바등 살아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좀 비겁하고 그래서, 앞에서는 말 못하고 괜히 꽁해서 이런 글을 쓰고야 말았다.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든다. 그냥, 나를 좀 안아주지. 훈계와 조언만 가득한 주위에서, 누군가의 포옹은 참 큰 힘이 되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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