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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emian Writer Aug 01. 2023

이토록 안온하고 익숙한 불행

우울로 인한 휴직 후의 복직

    가난은 물질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었다. 메마른 삶의 길에서는 내디딘 걸음마다 서걱 소리가 들렸다. 그러려니가 잘 안 됐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는 어디로 가고는 있는지 모두 명확하지 않았다. 모든 방향으로의 길이 요원했다. 목적지가 없으니 그저 무의미한 떠돌이였다. 바닷가도 아닌 곳에서 표류했다. 배가 고팠던 정신의 빈곤은 하도 먹을 게 없어 내 마음을 게걸스럽게 물어뜯었다. 마음의 상처는 참 못나게 덧났다. 우울이었다. 깔끔하고 단순한 병명은 그 기저에 도사린 우글거리는 고통에 씌어진 베일과도 같았다. 나의 아픔은 가볍게 범주화 됐다. 잔인한 멸시와 천진한 호기심이 교차하며 마음의 병을 훑고 지나갔다. 어떤 밤에는 차라리 마음 대신 다른 곳이 아팠다면 어땠을까 철딱서니 없이 바라곤 했다. 그러는 동안 환부는 더 곪았다. 최선의 배려는 무관심일 때도 있는 법이다. 너무 많은 궁금증과 오지랖으로 그게 잘 안 되는 세상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그러니 일종의 가면을 쓰고 살았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척'과 친해졌다. 괜찮은 척, 멀쩡한 척, 나아진 척. 배우도 아닌 주제에 연기를 했다. 숙련된 배우가 아닌 나는 어쩔 수 없는 한심한 아마추어였다. 서툰 연기는 그리 유용한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말은 말을 불렀고, 말은 쉽게 부풀곤 했다. 피상적인 병명으로 나는 재단당했다. 몰지각한 오해들이 뒤를 이었다. 얕은 정도의 이해로도 인과관계는 손쉽게 창출됐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그러니 그럴 수밖에 없었지'. 내 목을 옥죄는 건 이딴 싸구려 연민과 동정이었다. 팍팍한 세상 살이 중에 마주한 훌륭한 흥밋거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가벼운 연민과 동정 정도가 이 흥밋거리를 소비하기 위한 푼돈의 금액이었다. 쉽게 뱉어진 해석들은 진실과 오해의 경계를 무력화시켰다. 나는 여전히 '척'만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즐거운 척, 밝은 척, 괴롭지 않은 척.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척'들은 다시 내 어깨를 짓눌렀다. 늪에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저 깊은 바닥까지 끌려갈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누군가의 '잘 지내?'라는 물음에, 나는 '지내'라고 답했다. 잘 지내는 삶은 어떤 것일까 싶었다. 마음이 가난하지 않았던 적이 있긴 있었나 궁금했다. 수많은 '척'들에 나는 지쳤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나를 지켜내야겠다는 견고한 자존감은 진작에 없었다. 다만 이 악몽이 싫었다. 지옥 같은 끔찍함엔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3개월의 휴직을 신청했다.

     휴직이라고 맘껏 재충전하는 바람직한 그림 따윈 역시 없었다. 이것도 못 견딘 한심한 놈이라는 자기 비하가 매일 이어졌다. 나는 나를 안을 줄 모르는 바보다.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말을 건넬 수 없는 겁쟁이다. 그러니 비겁하게 깨지 않는 잠을 갈구했다. 소용없는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겨낼 만큼의 고통을 겪는 것뿐이라고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뭔가를 이겨내고 싶지 않았다. 싸움 자체가 지치고 싫었다. 안 그래도 벅찬 삶에서 굳이 투쟁을 해야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겨냈다는 성취감 따위 없어도 되니, 이 괴로움만 좀 경감해달라고 누구에게라도 빌고 싶었다. 이래서는 또 이대로는 도무지 안 될 것 같았다. 휴직 중 어느 밤에, 충동적으로 스페인행 비행기를 끊었다.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준비 상태로 여행을 떠났다. 술을 마셨고, 많이 걸었으며, 한껏 게을러보기도 했다. 스페인을 갔던 건 톨레도를 다시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히는 그곳의 야경을 꼭 다시 보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삶이 한없이 지랄 맞을 때 나는 자의로든 우연이든 톨레도를 찾게 되었다. 맥주 한 캔을 들고 바위에 걸터앉아 하릴없이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톨레도는 그대로 예뻤다. 여전히 아픈 내게 건네는 여전한 아름다움이었다. 위로가 돼서였을까. 그 바위에서 나는 조금 울었다.


    복직의 시기는 금방 다가왔다. 부서를 옮겼다. 태어나 첫 직장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부서를 떠나게 되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감정들이 마음 안을 유영했다. 새 부서에서 가장 먼저 한 건 역시 '척'이었다. 이번엔 멀쩡한 척을 했다. 멀쩡하지 못하기에 멀쩡한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멀쩡함까지도 연기를 해야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너질 때도 있었다. 그래도 무너지지는 않았다. 우울에 마음이 잠식당하는 건 여전했지만, 그럼에도 무너지지는 않았다. 굳건한 결심이 생겨서는 아니었다. 여기에서까지 무너지면 나는 세상 어느 곳에도 설 수 없을 거라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멀쩡한 척을 아무리 해대도 멀쩡해지지는 않았다. 멀쩡한 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때면 자괴감이 몰려오고는 했다. 지난날이 가여웠고, 현재에는 저주를 퍼부었으며, 미래는 안쓰럽게 느껴졌다. 누구보다 먼저 나를 안아주고 싶다. 내가 먼저 내게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고 싶다. 불행과 우울이 마음 안에 너무 가득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그 악성 감정들에 익숙하다. 괴로운 아픔을 토로하고 이에 비명을 지르며 꺼지라고 하고 싶지만, 어느새 불행과 우울의 어깨에 고개를 걸친 나를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그게 좀 지겹고, 많이 슬프다.


    구원 같은 건 없어도 된다. 어차피 지금까지의 삶에서 구원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좀, 멀쩡한 척은 안 하고 싶다. 그냥 멀쩡하고 싶다. 소원이다. 멀쩡한 정도만 되겠다는 이 소박한 소원 하나를, 내 외침의 수신인은 매 번 거절한다. 여전히 나의 연기는 서툴다. 어설픈 멀쩡한 척에, 다시금 왜곡된 측은함이 내 주위를 감쌀까 봐 두렵다. 멀쩡해 보이기 위해 '척'을 할 때만큼 비참한 순간이 또 없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으니 앞으로는 축복만 있을 거라는 동화는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덜 아팠으면 좋겠다. 더 나를 아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당장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누군가의 힐난이 자연스레 따를 것이다. 그 쉬운 걸 못해서 내가 지금 이 지경으로 아픈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말로 그저, 불행이 주는 이토록 안온하고 익숙한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이게, 지나치게 그리고 염치없이 많이 바라는 건 전혀 아니지 않나. ‘척’들의 연속에 한 생이 참 꾸준히도 피폐해지고 있고, 그게 나의 삶인 게 아리도록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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