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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emian Writer May 21. 2023

넬, <Goodbye, Hello>

우리에게도 <코코>가 있다면

    영화 <신과 함께>의 세계관을 따르자면 이 나라는 저승에서도 헬 조선이다. 일본 사람들은 죽으면 <원더풀 라이프>와 같이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재연하러 가고, 멕시코 사람들은 사후 세계 <코코>에서 축제를 나누는데, 이 나라에서는 죽음 이후에도 강제 노역형에 준하는 지옥들을 거쳐야 한다.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살기 빡센 건 마찬가지인 국가다. 난이도가 매우 높다. '극락'과 '나락'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 요즘, 1월 1일에 열린 밴드 넬의 연말 혹은 연초 공연은 문자 그대로의 '극락'이었다. 압도당했고, 행복했다. 무대 연출은 탄성을 불러일으켰고, 보컬 김종완의 목 상태도 그야말로 황홀했다. 잠실 학생체육관의 태생적인 음향적 한계가 있지만 그것까지는 감별해낼 수 없는 귀여서 정말 부족함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몇 개가 셋리스트에서 빠진 게 아쉽지만, 어차피 무슨 곡이 빠졌더라도 아쉬웠을 테다. 아쉬움은 다음 콘서트를 방문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고, 이는 지랄맞은 돈벌이의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이 시각 세상 어느 곳에 천국이 존재한다면 그건 바로 여기의 극락이라고 증거할 수 있을 정도로 열렬히 행복했다. <신과 함께>의 고통스러운 세계관 대신, <넬과 함께>라면 얼마나 즐거울지에 대해서 상상하기도 했다. 그건 아마 '네 평 남짓한 공간'만 주어져도 행복한 '섬'일 것이다.


    <넬과 함께>의 포문은 작년에 발매된 싱글 'Still Sunset'이 열었다. '늘 여기 서 있을게'라는 가사가 언제나 뭉클함을 느끼게 한다. 아이유의 공연에서 팬들이 앵콜 구호 대신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본 적 있다. 'Still Sunset'은 넬이 발매한 곡이지만 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라는 팬들의 바람이 담긴 노래처럼 들리기도 한다. 언젠가의 넬 공연에서 '늘 여기 서 있을게'를 함께 떼창하며 앵콜을 기다리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조금 하기도 했다. '현실의 현실'까지 마친 뒤 'Home'의 전주가 연주되었다. 언젠가 기억의 소용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적 있었다. 끝난 사랑의 유산 같은 기억 조각들을 붙잡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이 초라한 파편 하나를 그러나 놓을 수 없어 더욱 움켜쥐었고, 움켜쥔 손에는 조금의 피가 나기도 했다. 세월의 굳은살은 이런 상처를 겪으며 생긴다. 상처가 발생하고, 아물고, 다시 상처가 발생하며 어느덧 굳은살이 생겨 삶을 방문하는 꽤 많은 나쁜 것들에 그러려니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고, 기억의 파편은 나를 참 많이 괴롭혔다. 이때 'Home'을 들으며 '기억만으로도 내 심장을 뛰게 해'라는 가사에 참 많은 걸 배웠던 적 있었다. 사람의 살을 지탱하는 건 추억과 희망이고, 더 이상 추가될 것 없는 추억이라도 마음 안에서 온기가 되어 빛날 수 있음을 이 곡을 계기로 생각할 수 있었다. 풀스크린의 압도적인 무대효과와 함께 'Home'을 들었고, 이때가 이번 공연들 중 가장 벅찼던 순간들 중 하나였다.

Nell's Room 티켓

  파도와 물결이 세차게 넘실거렸던 '위로'를 지나 넬의 애국가 '기억을 걷는 시간'을 함께 불렀다. 이후에는 분위기가 최고조에 올라 롸킹한 곡들이 많이 나왔다. 'Dream Catcher'가 빠진 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Ocean of Light'까지 이어지는 여정에서 나는 미친 듯이 즐기고 열광했다. 작년 고요했던 넬의 연말 공연과는 달리, 함께 떼창을 하며 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역시 공연은 상호작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티스트의 음악과 팬들의 함성이 합쳐져 좋은 공연이 완성된다. 그 기쁨을 이렇게 일 년의 시작부터 누릴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이번 일 년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랄맞은 생을 살아낸다는 건 그 자체로도 아주 고되고 힘든 일이다. 나는 가끔 행복이라는 게 실은 이토록 불행한 세상에서 쉽게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하나의 상징적 역할밖에 수행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던 적 있었다. 불행의 시간은 길고 행복은 너무 짧다. 불행과 행복이 1:1의 비율이어도 삶을 살아낼 수 있는지 의문인데, 불행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크게 느껴지니 이건 아무리 봐도 조금은 불공평한 밸런스다. 그래도 내가 콘서트에 있는 순간들처럼, 행복은 분명 존재한다.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건 그동안도 살아있었다는 관성이긴 하지만, 거기서 가끔씩 찾아오는 행복이 있다면 조금은 그 관성에 생기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행복했던 'Ocean of Light' 떼창이었다. 이후 공연은 막바지로 향하여, '백색왜성'과 '꿈을 꾸는 꿈'이 이어서 들려졌다. '백색왜성'의 음악과 스크린은 정말 '백색왜성'에 대해 눈과 귀로 느낄 수 있었다. 그저 딱딱한 과학을 감각으로 느껴보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꿈을 꾸는 꿈'은 특히 오랜만에 들은 곡이었다.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 그리고 때론 나의 꿈을 누군가가 비웃고 무시할 때, 그 멸시들에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며 나만의 갈 길을 가라는 응원이 담긴 곳이다. 물론 난 이제 취업을 했고 나만의 길이라는 게 거의 가능성이 없지만, 그래도 가슴속에 꿈 하나 정도는 찾아서 넣는 게 인생이 조금 더 풍요롭지 않을까 생각했다.


  본 공연은 '꿈을 꾸는 꿈'까지였고, 앵콜로 '기생충', '인정의 미학' 그리고 '믿어선 안될 말'이 차례로 연주되었다. '기생충'은 언제나처럼 신났고, '인정의 미학'은 처음 들었음에도 라이브가 참 좋았으며, '믿어선 안될 말'의 경우는, '기억을 걷는 시간'이 애국가라면 '믿어선 안될 말'은 마치 아리랑 같아서, 수도 없이 라이브로 많이 들었음에도 역시 또 전율을 느끼고 왔다. 공연이 끝나고 여운이 유난히 짙었다. 큰 아쉬움도 없었다. 셋리스트도 흔히 말하는 '사골 곡'과 '레어곡'이 잘 섞여 있었고, 풀스크린을 활용한 무대 연출은 정말 다시 한번 압도적이었다. 그러니 '극락'이었다는 표현을 써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 사후세계가 <신과 함께>가 아닌 <넬과 함께>이기를 바라기도 했다. 우리의 사후 세계에도 <코코>가 있다면, 그중 헤드 라이너는 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넬의 최고의 장점은 삶의 어떤 순간에도 이들의 노래를 통해 위로와 공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다룰 수 있는 아티스트며, 그래서 넬의 음악들은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들이기도 하다. 넬의 연말 및 크리스마스 공연은 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개최하는 대잔치 같은 느낌도 준다. 이들의 연말 공연을 가지 않는다면 뭔가 한 해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느낌까지 들 때가 있다. 몇 년째 이들의 콘서트에 개근하고 있는 건, 갈 때마다 다른 종류의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없으니, '애기 분유값을 벌어야 한다'보다는 '넬의 콘서트에 빠져서는 안 된다'라는 신념으로 돈을 번다. 이번에도 그 신념을 굳건히 할 수 있었다. 굳이 유행어를 하나 말하자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덕심' 정도 되겠다.

Nell's Room 2022

    본 공연은 '꿈을 꾸는 꿈'까지였고, 앵콜로 '기생충', '인정의 미학' 그리고 '믿어선 안될 말'이 차례로 연주되었다. '기생충'은 언제나처럼 신났고, '인정의 미학'은 처음 들었음에도 라이브가 참 좋았으며, '믿어선 안될 말'의 경우는, '기억을 걷는 시간'이 애국가라면 '믿어선 안될 말'은 마치 아리랑 같아서, 수도 없이 라이브로 많이 들었음에도 역시 또 전율을 느끼고 왔다. 공연이 끝나고 여운이 유난히 짙었다. 큰 아쉬움도 없었다. 셋리스트도 흔히 말하는 '사골 곡'과 '레어곡'이 잘 섞여 있었고, 풀스크린을 활용한 무대 연출은 정말 다시 한번 압도적이었다. 그러니 '극락'이었다는 표현을 써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 사후세계가 <신과 함께>가 아닌 <넬과 함께>이기를 바라기도 했다. 우리의 사후 세계에도 <코코>가 있다면, 그중 헤드 라이너는 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넬의 최고의 장점은 삶의 어떤 순간에도 이들의 노래를 통해 위로와 공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다룰 수 있는 아티스트며, 그래서 넬의 음악들은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들이기도 하다. 넬의 연말 및 크리스마스 공연은 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개최하는 대잔치 같은 느낌도 준다. 이들의 연말 공연을 가지 않는다면 뭔가 한 해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느낌까지 들 때가 있다. 몇 년째 이들의 콘서트에 개근하고 있는 건, 갈 때마다 다른 종류의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없으니, '애기 분유값을 벌어야 한다'보다는 '넬의 콘서트에 빠져서는 안 된다'라는 신념으로 돈을 번다. 이번에도 그 신념을 굳건히 할 수 있었다. 굳이 유행어를 하나 말하자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덕심' 정도 되겠다.


    이렇게 한 해의 시작을 넬의 공연과 함께 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공연을 보면서는 올해 참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행복 회로를 살짝 돌려보기도 했다. 넬은 나의 아이돌이다. 우상이라는 아이돌의 뜻을 감안하여, 내 아이돌 밴드는 바로 넬이다. 이들을 좋아하고 노래들을 들으며 배우고 받은 것이 많다. 사실 요즘 인생 자체로는 무미건조하고 그리 쉬운 상황만은 아니었다. 때론 분노하고 깊이 슬퍼했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던 찰나에 다녀온 콘서트였던 것이다. 콘서트를 마치면 나는 며칠을 내내 넬의 노래만 듣는다. 이 음악들을 며칠째 내내 들으며, 그래도 언젠가는 현재 나의 상처를 담담하게 응시하고 그 상처 또한 조금은 무뎌진 것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한 사람의 역사와 그 사람이 남긴 발자국이 큰 위로와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나보다 먼저 아픔을 경험한 선배가 그래도 점점 더 세월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언젠가 나의 아픔도 저렇게 치유까지는 아니라도 무뎌질 수는 있기를 소망했다. 진심으로 고마운 밴드다. 오죽 고마웠으면, 내가 쓴 지리멸렬하게 안 팔리는 책에도 '일면식도 없는 밴드 넬에게도 감사하다'라는 말을 썼겠는가. 책이 나온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나의 마음은 변함없다. 참 고마운 밴드다. 내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좋아하는 것임에도 그게 전혀 아깝거나 망설여지지 않는다. 늘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앞으로도 인생 선배로서 멋진 걸음들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럼 나는 그 길을, 열심히 위로를 받으며 그들의 발자국에 나의 걸음 하나를 포개겠지.


    ※Goodbye, Hello in Nell's Room 공연 후 1월에 블로그에 올린 글을 조금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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