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내 인생 첫 아이돌은 SG워너비였다. 그때의 인기라면 정말 '아이돌'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다. 실제로 비슷한 창법과 장르의 가수들이 그 이후에 나오기도 했으니 '아이돌'이라는 게 그리 틀린 표현도 아니다. 3월 마지막 날에 오랜만에 SG워너비 완전체의 콘서트가 있었다. 콘서트에서 느꼈지만, SG워너비의 노래들이 지난 삶의 궤적과 참 많이 동행했다는 걸 느꼈다. 참 새삼스러운 사실이었지만.
아마도 2007년이었다. 벌써 아주 오래 전인 이때, SG워너비의 4집이 발매되었다. 해당 앨범의 타이틀곡인 '아리랑'이라는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땐 막상 썩 좋지만은 않았던 기억이다. 국악과의 조합이 조금은 뜬금없다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콜라보에 익숙하진 않았던 당시의 내 음악 취향이었다. 그러나 크고 나니 이 노래의 가사가 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만날 순 없겠지만, 이토록 사랑했던 나를 잊지는 말아요'. 이 부분이 참 절절하게 다가왔다.
3월 콘서트에서 이 노래의 저 부분을 듣는데,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만날 수 없단 사실을 견딜 수 없어서 무너지는 세상을 감당해야 했던 어떤 지난 날이 불현듯 떠올랐다. 참 많이도 아팠던 그때였다. 아무리 '잔인한 세상'이라는 말이 클리셰로 쓰이지만, 이런 고통까지 주나 싶을 정도로 괴롭고 힘들었다. 그땐 20대 초반이었고, 어렸던 만큼 많은 걸 몰랐고, 남은 삶은 너무 많았고, 그 긴 시간을 그 사람 없이 보낼 자신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내 세상의 첫 몰락이었다.
그때의 그 사람이든 나든 둘 다 살아는 있으니 평생 살아가다보면 한 번은 어딘가에서 마주칠 수도는 있겠지만, 시간이 지난 이젠 그걸 전혀 갈구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만나면 만나는대로 아니면 아닌대로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이 살아가거나 마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꽤나 흐른 뒤 지금의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요즘 많이 되뇌인다. 사랑의 상실에 충분히 괴로워봤기에 이 사람이 무척 절실하지만, 그 시간동안 나를 돌보았기에 이전처럼 모든 걸 건 듯 초조하거나 절박하지는 않는다. 소중한 사람을 보다 더 성숙하게 사랑할 수 있어 그런 점이 다행이다. 지난 사람이 남긴 고맙지는 않은 선물이지만, 어쨌든 그 덕에 조금 더 자신을 아끼며 상대를 사랑하는 법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가끔 행여의 서글픈 가능성에 불안할 때도 있지만, 서로 있는 힘껏 확신을 주면서 우리를 이어나가고 중이다.
'아리랑'만큼이나 시적인 노래로, SG워너비의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라는 담담한 노래가 있다. '언젠가 사랑에 대해 묻는 이를 만난다면 전부 그대였다고 말하겠소'라는 가사가 이 노래에 담겼다.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만나지 못해도 이제는 아무렴 괜찮은 사람이 된 지난 기억이고, 이젠 누군가 사랑에 대해 물으면 지금 사람을 얘기할 것 같다. 늘 형용하기도 힘든 벅찬 마음을 줘서 지금의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 뿐이다.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잊힐 것 같지 않았던 누군가가 잊혀도 상관없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무슨 일을 명징하게 파악하려면 어느 정도의 물리적인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시간을 지나 만나게 된 지금 이 소중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함께 있을 사람이기를 바란다. 아팠던 혹은 아프기만 했던 시간을 털고, 우리 얘기를 '둘이서 라라라' 써낼 수 있어서, 삶이 조금은 행복이란 사치까지도 누리게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