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내일이 날 깨울 테고 그 내일은 오늘 같은 내일일 게 너무 뻔해서, 무채색의 재미없는 날을 굳이 또 보내고 싶지 않았어. 애써 소화하고 소비하기에 24시간은 너무 버거웠거든. 그래서 나는 가뜩이나 오지 않는 잠을 애써 더 밀어내고 멀리하며 때론 저주했고 불면을 염원했어. 뭐, 잠을 자지 않는다고 특별히 다른 걸 한 건 아니었지. 그냥 때론 멍하니 화면을 보고 주로 음악을 듣고 가끔 책을 읽었어. 그땐 쉽게 읽히는 시집이 참 좋더라.
언젠가 사랑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나는 잠을 청원했어. 밝은 모습으로 내 사랑을 만나야 했기에, 꿈도 없는 깊은 잠을 소원했지. 꿈에서 만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꿈이 아닌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맘껏 행복하려면 잘 자야 된다고 믿었어. 축복 같은 현실이라는 게 위선적인 형용모순이 아니라 맞는 말일 수 있더라고. 내일이라는 게 기대되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었어. 어차피 내일은 나를 깨우겠지만, 그러니 이왕이면 부리나케 깨워달라고도 염치 없이 부탁했어.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내가, 잠을 더 미워하지 않게 해준 그때의 내 사람. 여전히 꿈에서도 단 한 번 나타난 적 없는 모질고 현명한 당신. 꿈에서라도 보고싶지만, 꿈에서라도 만나는 일은 부디 없었으면 해. 애써 쌓은 다짐과 결심들이 와르르 무너질 테니까.
그런 서글픈 하루를 살고 싶지는 않아. 정말로, 당신이 잘 자면 좋겠어. 당신의 내일이 당신에게 기대되면 좋겠어.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당신이 살고 있다고 믿으며, 나도 내 몫의 삶을 애써 성실히 살아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