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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emian Writer Sep 02. 2023

<나의 해방일지>

당신과는 그래도 될 것 같아서요

믿는 신도 없고, 아마 정말로 죽어봐야 알겠지만 사후세계의 존재에도 회의적입니다. 그러니 영원도 없다고 생각하고 굳이 그걸 바라지도 않습니다. 되려 좀 영원이라고 하면 피곤해지네요. 모든 것들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이 되려 그 존재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생각에 걸맞게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사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면, 꽤나 자주 게으르게 시간을 낭비하는 제가 우습고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요.


물리적인 마침표가 궁극의 끝이고 우린 매일 그것에 가까워지며 하루씩을 살아가지 않나 싶습니다. 가끔은 퍽 허무한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부질없어질 무언가에 열렬히 천착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 때 특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런 게 세상인 걸. 너무 체념적인 것 아닌가 한 번 돌이켜보지만 다른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는 않네요. 어떻게 보면 받아들이기 나름인 것 같지만, 아무튼 전 존재의 필연적 유한함에 전적으로 확신하는 제 사고방식이 싫지는 않습니다.


제가 맺은 관계, 하고 있는 일들, 때때로 드는 아픈 생각들 모두 언젠가는 부질없음의 역사로 편입될 것을 너무 잘 압니다. 아마 부질없음의 종착지에서는 잊히고 버려지며 때론 주인을 잃은 기억과 흔적들이 지독한 연기와 함께 소각되고 있겠지요. 딱히 후대에 널리 널리 기억되고 싶은 욕심은 없으니, 언젠가는 반드시 부질없어진다는 사실이 그리 슬프진 않습니다. 아무런 자취도 없이 사라질 걸 알면서도 우린 바닷가에 가면 나뭇가지나 돌 하나씩을 들고 모래 위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그리잖아요. 그렇게 살아가는 거죠.

실은, 이 장황한 이야기는 늦은 밤 당신을 떠올리다 이르게 된 생각입니다. 우린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랑해'를 주고받고는 하죠. 거기다 가끔은 이 세상의 모든 축복이 우리에게만 독점적으로 맡겨진 듯 마냥 아이처럼 즐거워합니다. 제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저는 그런 순간에 종종 '끝'을 생각하는 못난 버릇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오늘은, 우리가 아주 오래오래 함께 시간을 나누다 당도한 우리 이야기의 마지막이 어떨지가 궁금해졌어요.


아마도 매우 높은 확률로 우린 서로 다른 시각에 서로가 견지한 세계의 끝을 확인할 테고, 누군가는 남겨지고 누군가는 떠나가겠지요.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누군가를 아프게 그리워하며 생을 이어가겠네요. 만약 그게 저의 몫이라면, 글쎼요. 그것도 겪어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좀 많이 서글프고 허전할 것 같았어요. 좀만 더 곁에 있어주지, 와 같은 생각으로 어쩌면 원망 아닌 원망을 해대며 오늘처럼 잠이 안 오는 밤을 보내기도 하겠네요. 평생 동안 재회할 수 없는 누군가를 그리며 사는 삶은 슬픔에 가까워 보이고, 그러니 이왕이면 제가 그 몫을 감당하는 게 더 낫겠다 싶기도 했어요. 당신이 슬퍼하는 건 저도 참 싫거든요.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

그러다 문득,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는 필요 없어"라는 어떤 드라마 대사가 떠올랐어요. 천국이 있든 없든 별 관심은 없지만, 아무튼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서로를 보듬어주기로 해요. 둘 중 하나가 부재하게 되더라도 남은 사람이 떠올릴 기억이 해사하고 따뜻했으면 좋겠어요. 조금 민망하네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고, 우린 그토록 긴 미래를 기약할 만큼 아주 오래 사랑한 사이는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생각해 보면, 꼭 관계의 물리적인 길이만이 이런 부질없는 상상을 마음껏 펼칠 권리를 수여하는 건 아니니까요.


혹시나라도 우리 사이에 슬픈 일이 생겨버려 우리가 우리가 아니게 된다면, 밤늦게 이런 쓸모없는 글을 쓴 스스로를 비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대책 없이 철없는 저 자신이고, 내일이면 잊힐 부질없음을 또 하나 참 정성도 들여 만들었다 싶기도 하지만요. 저도 도무지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쩐지 당신과는 이런 이야기를 나눠도 될 것 같았습니다. 어쩐지 당신과는, 영원처럼 아득한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함께 얘기를 주고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당신의 허락을 구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지금 당신은 내게 그런 사람입니다. 분명히 끝은 다가오겠지만 그게 너무 금방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함께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거든요. 어두운 밤을 평안하게 보내고 있기를 바라요.


당신이 그런 사람이어서 또 그런 사람이 당신일 수 있어서, 참 다행이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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