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고된 하루를 마치고, 또 여느 때처럼 한 병의 술을 앞에 두고 마주한 지쳐버린 우리.
에라 모르겠다며 바쁘게 잔이 오고 가고, 시끌벅적했던 낡은 술집의 소리에도 조금 익숙해졌을 때,
가게 한 구석 TV에서 방영 중인 애달픈 다큐멘터리가 눈에 들어온다.
평생토록 다신 볼 수 없을 이별을 앞둔 두 사람의 이야기.
왜인지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가는 임종 직전의 안타까운 인연.
조금의 취기에 잠시 목이 메이고, 잠깐의 환기가 필요했다.
어색한 헛기침과 함께 "마음 아픈 사연 그런 거, 하나도 없는 사람 없지 않을까"라며 술을 재빨리 의연한 척 들이켰고,
"그러면, 이토록 마음 아픈 사연들이 모여 사인(死因)이 되는 걸까?"라며 되도 않은 언어유희를 겸연쩍게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선 안 됐을 재미없는 첨언이었다고 후회하며 되돌아올 타박과 힐난을 예상하던 찰나,
"그러게, 그럴 수도 있겠네"라는 나지막한 응답이 들려왔다.
기대치 못한 반응과 예상치 못한 침묵 사이에서 나는 어색하게 서성였고 두 잔은 방황했다.
방황하던 두 잔이 마침내 접점을 이루었을 때 그 사람은 "참 슬퍼, 어떻게 보면"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한 생애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가슴 미어지는 사연들로 이루어진 걸까,
아리고 아린 사연들이 모여 끝내 한 생애를 무너뜨리는 걸까,
도대체 그런 사연들은 왜 이렇게 못 돼 처먹었을까,
못 돼 먹은 사연들에 맘껏 침범당하고 아픔은 축적됐을 그 마음은 오죽했을까,
먼 훗날 우리 둘이 나눈 시간은 어떤 사연이 돼 있을까,
우리라는 사연도 사인들 중 하나가 된다면 그건 좀 많이 슬플 것 같은데,
따위의 부질없는, 정말 순수하게 부질없는 이야기로까지,
형편없는 언어유희로 시작된 사연은 계속하여 끈질긴 수명을 민망하게 이어갔다.
한땐 차디찬 얼음물이었으나 이젠 단 두 개의 얼음만이 동동 떠다니고 있는 물을 마시는 그 사람을 보며,
무슨 말이라도 너무 하고 싶었지만 하고 싶은 어떤 말도 떠올릴 수 없던 나는,
"사랑하자"라는 할 수 있는 말을 다행스럽게도 겨우 찾아냈다.
우리가 주인공인 사연의 결말이 어떻든 우선 지금은 사랑이나 하자고.
이왕이면 죽도록 사랑해도 나쁠 것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조금은 눈치를 보며 부끄럽게 건넸고,
그 순간 글썽거리던 그 사람의 눈을 목격했다.
"그 말, 꼭 지켜야 해."
우린 너무도 익숙한 온도의 손을 맞대며 새끼손가락을 걸었고, 두 잔은 다시 부딪혔다.
저 여린 사람도 남은 날들을 살아가며 참 많이 울겠지만, 그리고 어떤 울음들은 가슴 미어지는 사연 때문일 테지만,
그래도 세상이 조금이라도 우리 편이라면 그토록이나 미어지는 아린 사연의 주인공이 우리는 아니기를,
세상의 무너짐이 요행으로라도 우리만은 어떻게든 피해주기를,
찰나의 짧은 순간 바랄 수 있는 가장 강한 진심으로 소원했다.
작은 눈물방울이 맺힌 그 사람의 눈을 오래도록 응시하던 중
"무슨 생각해?" 그 사람이 물었고,
"안 해, 아무 생각도. 술이나 마시자."라고 대답했다.
경쾌하지도 울적하지도 않은 그저 담백한 '짠' 소리로 두 잔이 다시 맞대어졌고,
아마도 몹시 쉽게 잊히지는 않을 사연 하나가 생긴 것 같다며 나는 천천히 잔을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