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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에프킬라

육아일기

by Rainsonata

2004년 8월 24일


집 근처에 제법 긴 산책로가 있다. 사이클과 산책 그리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고, 애완견을 키우는 분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우리 가족이 걷기로 선택한 코스는 왕복으로 1시간 30분가량이 걸리는데, 대체적으로 완만한 경사라서 랄라를 유모차에 앉혀 밀면서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이 산책로의 한 가지 단점이라면 모기가 유난히 많은 구간이 몇 군데 있다는 것인데, 랄라에게 BUG FREE SPRAY를 몸에 뿌려주는 것을 깜박 잊은 나는, 산책 도중 스톰의 현란한 푸닥거리 댄스를 보며 배꼽이 빠져라 웃느냐 발에 힘이 풀려 시종 뒤쳐져서 걸었다. 이건 정말 비디오로 찍어야지만 현장감이 팍팍 살아나는데, 이렇게 글로 남기려니 자꾸 웃음만 나오고, 잘 써지지가 않는다.

대략 말하자면 이렇다. 스톰과 내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유히 산책로를 걷는 도중, 반바지를 입고 있던 스톰이 제일 먼저 모기의 출현을 감지하면, 바로 랄라가 탄 유모차를 쌩쌩 밀면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스톰이 날쌘 모습으로 달리기만 한다면 일반 아빠들과 별로 차이가 없겠지만, 스톰은 뛰는 동시에 오른손으로 랄라 주위에 모기가 모여들지 못하게 푸닥거리하듯이 계속해서 손을 휘젓는 것이다.

그러다가 엎치는데 덮치는 격으로 스톰의 다리에 자꾸 모기가 달려들기 시작하면, 모기를 손으로 탁탁 때려 좇는 동시에, 랄라를 모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푸닥거리 댄스도 멈출 수 없는 스톰의 몸부림이 어마어마한 광경을 연출해 낸다. 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한 랄라와 스톰의 모습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나는 정말 너무너무 웃겨서 그냥 산책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나중에는 너무 웃어서 배가 어찌나 아프던지.

산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빈 유모차를 밀고 스톰은 랄라에게 무등을 태워주었는데, 스톰의 셔츠 뒷면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땀에 젖은 스톰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한번 그의 현란했던 푸닥거리 댄스가 생각나서 또 한 번 배를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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