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 엄마

육아일기

by Rainsonata

2004년 9월 1일


랄라는 요즘 말 배우기에 한창이다. 몇 달 전부터 동화책보다는 그림 단어장처럼 되어 있는 책을 선호해서 두 권을 구입해 줬는데, 특히 오후 5시 이후부터 잠자기 전까지의 책 읽기를 무척 즐긴다. 랄라가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 내 품에 안겨주면, 나는 하나씩 그림을 가리키며 천천힌 단어를 읽어준다. "랄라야, 이건 뭐야?" 하고 물어보면 랄라는 때때로 흥미로운 답변을 하기도 한다. 작은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을 몹시 즐거워하는 랄라를 위해 책장 넘기기는 언제나 랄라의 몫으로 남겨둔다. 이렇게 묻고 답하는 형식의 책 읽기를 즐기며 토실토실한 랄라의 엉덩이를 끌어안고 같이 보내는 시간은 정말 행복하다.


책은 랄라가 잠자는 곳과 거실에 놓아두었는데, 랄라는 읽고 싶은 책이 거실에 없으면 벌떡 일어나 거침없이 마루를 퉁퉁 구르며 방으로 뛰어들어가 꼭 지금 읽고 싶은 책을 찾아온다. 이 모습이 아기 오리 같기도 하고 곰인형이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여서 내 눈에는 마냥 사랑스럽고 귀엽다. 제일 이쁠 때는 목욕 후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랄라가 혼자 얌전히 무릎을 꿇고 침대 위에 앉아 뭐라고 말도 하고, 때로는 고개도 끄덕이면서 책장을 하나씩 넘기고 있을 때다. 아... 그때만큼 랄라가 기특해 보일 때는 없다. 랄라가 책을 많이 읽어서 똑똑해 지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찾아 읽고 있는 랄라의 차분한 모습이 너무 대견할 뿐이다.


요즘은 그림 단어책을 보면서 랄라는 아는 그림이 나오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무" "나비" "꽃" "물" 하면서 말을 하기도 하고, "어흥" "짹짹" "와우와우" "먀오" 하면서 동물의 울음소리를 흉내내기도 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지만 그림과 연상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도 빠지지 않고 말해준다. 예를 들면 기타의 사진을 보면 "기타"라는 단어는 말할 줄 모르지만 "아빠"라고 말한다. 왜냐면 아빠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주니까 기타는 아빠 거라는 소리다. 근데 어제 오후에는 좀 우스운 일이 있었다.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가던 망치 그림을, 이번에는 두 번째 손가락으로 꼭 누르면서 "엄마" 하고 외쳤다.


랄라가 왜 망치 그림을 보고 엄마를 떠올렸는지 스톰과 나는 잘 안다. 계절과 분위기에 따라 가구 배치를 바꾸는 것을 즐기는 나는 종종 벽에 소품이나 액자를 다느냐 못질을 할 때가 있다. 아마도 랄라는 그림책에서 망치를 본 순간, 평소 엄마가 망치를 들고 집안을 서성이던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을 것이다. 랄라가 피아노를 가리키며 엄마라고 한다면 뭔가 더 고상하고 우아해 보일 듯싶지만, 망치를 가리키며 "엄마!"라고 씩씩하게 말하는 랄라를 보니 '망치 엄마'가 된 기분도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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