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라의 배신

육아일기

by Rainsonata

2005년 6월 29일


스톰이 어떤 정성으로 랄라를 키웠던가.


32개월 동안 스톰이 출장 가는 날, 랄라가 콧물 나는 날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손수 목욕시키지 않았던가. 그뿐이랴! 스톰의 푸닥거리 댄스를 기억하는가? 더운 여름 내내 산책하는 동안 랄라에게 몰려드는 모기를 쫓기 위해 매일 저녁 2시간 동안, 산책길 위로 유모차를 쌩쌩 달리며 모기의 접근을 막고, 그것도 모자라 모기로부터 랄라를 지켜낸다는 사명감 하나로 푸닥거리 댄스를 시종 멈추지 않았던 스톰이 아닌가. 그뿐이랴! 새벽에 잠이 깬 랄라를 안고 동이 틀 때까지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테크닉을 발휘하며 온 집안을 서성거리던 스톰이 아닌가. 스톰이 랄라를 키우면서 쏟은 정성과 인내는 하늘도 알고 땅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 스톰은 랄라에게 배신당하고 말았다며 전화로 나에게 서운함을 토해냈다.


"있잖아. 오늘 아침에 유아원에 갔는데, 창문으로 도미닉을 보자마자 랄라가 내 손도 뿌리치고 "도마맥" 하고 (랄라는 도미닉을 도마맥이라고 부름) 달려가는 거야. 도미닉도 달려 나와 문을 열어주더니 둘이 손잡고 바로 들어가 버리는 거 있지. 난 뒷전이랄까. 솔직히 이건 정말 무시지 뭐."


"오빠! 내가 얼마 전에 얘기했잖아. 랄라랑 도미닉이랑 서로 좋아한다고. 내가 데려다 줄 때도 도미닉이랑 만나면 껴안고 그래. 나도 뒷전인걸 뭐. 너무 맘 상해하지 마. 귀엽잖아. 도미닉도 랄라 보면 항상 자기 옆에 앉으라고 의자도 갖다 주고 그러면서 얼마나 자상하게 잘해주는데. 이쁘지 않아?"


"....."


스톰의 마음을 어지럽힌 도미닉이란 소년은 내일모레면 여섯 살이 되는 랄라네 반 로라 선생님의 아들이다. 매주 금요일이면 랄라네 반에 와서 같이 지냈었는데, 지금은 학교가 방학을 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도미닉을 데리고 출근하실 때도 있다고 들었다. 맑고 큰 눈망울을 가진 아주 총명하게 생긴 아이인데, 메너도 얼마나 좋은지 친절이 몸에 밴 소년이다. 난 평소에 둘이 잘 노는 걸 보면 그저 흐뭇하고 귀엽던데, 스톰은 역시 아빠라서 나와는 다른 감정이 앞서나 보다.


신혼시절 텔레비전에서 "Father of the Bride"를 해줄 때면 그냥 웃고 보던 스톰이, 랄라가 태어난 후 같은 영화를 볼 기회가 생겼는데, 그때는 사뭇 깊은 생각에 잠겨서 보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 랄라도 예쁜 결혼식 올리게 해 줄 거야. 우리 집 정원에서 이 영화처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리고 랄라가 쓰던 방은 영원히 바꾸지 않고 언제든지 랄라가 돌아와 쉬어갈 수 있게 그대로 놔둘 거야." 하며 혼잣말을 하던 스톰.


그런 그가 오늘의 쇼크에서 빨리 벗어났으면 한다.


"스톰! 내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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