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2006년 10월 6일
며 칠전 시립박물관에 강박성 인격장애에 대한 연구 자료를 구하기 위해 들렀다가, 지하 1층부터 지상 8층까지의 방대한 규모의 도서관에 홀딱 혼을 뺏기고 왔다. 원래는 적어갔던 도서목록의 책을 구한 뒤, 바로 도서관 책상에 앉아서 Research Paper에 대한 윤곽과 구성을 그려보는 것에 집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나의 '삼천포 신드롬'이 또 발병되어 내가 관심 있어하는 다른 책들을 조금씩 조금씩 찾아다니다 보니, 도서 바구니를 혼자서 들 수가 없을 만큼 꽉 차 버리고 말았다. 결국은 드는 것도 너무 힘에 버거워져서 두 팔로 밀고 끌기를 반복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나중에는 기력이 모두 빠져 그냥 도서실 한 구석에 앉아버렸다. 더 이상 책을 찾아도 이제 바구니가 꽉 차서 담을 수도 없고, 팔과 어깨도 너무 욱신거리길래 앉은 김에 쉬어간다고 일단 흥미로워 보이는 책부터 무릎 위에 올려놓고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익은 제목이 흥미롭게 여겨져 Percival Lowell 이 1885 년에 출판한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을 제일 먼저 펼쳐보았는데, 내용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앞표지의 타이틀만큼 강한 인상을 주는 필적은 아니었다. 그래서 Isalbella L. Bishop 이 1897년에 출간한 <Korea & Her Neighbours>이란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결국 다른 책은 손도 못 대고 하루 종일 이 책 속에 파묻혀 있었다. 내용이 흥미로워서 한참 얼굴을 맞대고 책을 읽었더니, 나중에는 오래된 책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가 코에 배어 잠을 자는데도 책 냄새가 쉽게 떠나지 않았을 정도다.
19세기 말, 조선 - 일본 - 중국 곳곳을 여행한 영국의 Mrs. Bishop이라는 여행가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들이 가득한 이 책에는 필자의 예리한 관찰력과 여성 특유의 따뜻하고 섬세한 묘사가 담겨있다. 그리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관심과 감동이 어우러져 2권이나 되는 책의 양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이 책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일반 백성들과 왕실 그리고 외교관들의 삶을 정치적, 문화적, 외교적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기술해 놓았으므로, 그 당시의 시대상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 책이 한국어 번역판으로 나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역사나 정치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