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哀悼

by Rainsonata


배우 김주혁 씨의 죽음을 인터넷 기사로 알게 된 이른 새벽은 공교롭게도 나의 소중한 딸아이의 열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비보가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타고 있었다는 검은 승용차가 계단 아래에 구겨진 채 멈춰서 있는 사진을 본 뒤에야 비로소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 저렇게 큰 사고였구나. 그렇다면 그는 정말 유명을 달리했을 수 있었겠구나.’


평소에 유난히 좋아했던 배우도 아니었지만, 그의 죽음은 생각하면 할수록 몹시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사 아래 적힌 답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뜻밖에 많은 분이 애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를 향한 따뜻한 답글이 한둘씩 모여 작은 물줄기를 이루는가 싶더니, 하루가 지나자 이 애도의 강물은 우리 사회 면면을 굽이쳐 흐르기 시작했다. 한류의 상징적인 스타도 아니었고, 신에 들린 연기로 찬사를 듣던 배우까지는 아니었던 그의 죽음이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의 가슴에 슬픔과 그리움을 물들여놓은 것일까?


전례 상으로 11월은 죽음에 대해 묵상하는 달이라고 한다. 11월이야말로 사라져 가는 만물의 애잔함을 고스란히 품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달이다. 아직 나무는 잎을 다 떨구지 않았으나, 바람에 뒹구는 낙엽이 하루가 다르게 많아지리라는 것을 우리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첫 자락이 맞닿은 그곳에 11월이 숨 쉬고 있다. 11월은 우리가 풍성했던 가을의 숲을 지나 하얀 겨울의 호수로 건널 수 있도록 시간의 다리를 놓아주는 배려 깊은 달이다. 그렇게 우리는 11월의 다리를 건너며 침묵과 사유라는 아름다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기 전에 내려놓음의 지혜를 배우고,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한 겸손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11월은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현묘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리라.


주위를 둘러보면 11월처럼 늘 스포트라이트 아래 서 있지 않으나, 곁에 없으면 허전하고 은근히 소식이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남의 실수를 질책하지 않으며, 때와 장소에 맞춰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설 줄도 아는 사람. 너와 나의 관계를 뛰어넘어, 우리라는 하나 됨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사람. 그의 빈자리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기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사람. 아마도 배우 김주혁 씨도 그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에게는 그런 친구이자 동료이자 형이며 아우가 아니었을까 싶다. 흘러간 강물을 다시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그의 죽음을 우리는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소박하고 한결같은 인품이 이렇게 많은 사람의 가슴에 깊은 애도의 물결을 일렁이게 할 줄은 떠난 그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11월의 첫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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