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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사과

日日是好日

by Rainsonata


스톰과 함께 근처 강가에 낚시를 나왔다. 9월은 시작되었고 우리는 강물이 바라다보이는 다리 위에 의자를 나란히 펴놓고 앉았다. 스톰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나는 책을 읽는다. 아직도 강가에는 물안개가 몽롱하게 피어있고, 난 잠시 책을 내려놓고 스톰의 낚시 도구 상자를 열어 정리를 시작한다. 상자 밑바닥에 뒹구는 물컹물컹한 고무 재질의 미끼가 손끝에 닿는 순간 코끝이 싸-해진다.


스톰은 신혼 시절부터 나와 단둘이 낚시를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며 꿈이며 로망이었던 사람이다. 나는 뜨거운 햇살이 어지러웠고, 더위와 추위에 약했고, 오랜 시간의 기다림이 지루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했다. 갓 태어난 랄라를 나와 함께 보살피느냐 힘들어하면서도, 스톰은 틈틈이 시간을 내어 유모차와 낚싯대를 함께 차에 싣고 떠나는 여행을 즐겼다. 랄라의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과 간식을 챙기고, 아이와 같이 놀아주다 보면 낚시도 결국 육아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던 시절, 그래도 우리와 함께할 수 있어서 좋다고 스톰은 웃으며 말했다.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어느새 스톰과 결혼 생활을 시작한 지 14년이 되었고, 랄라는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렇게 스톰이 좋아하던 우리 둘만의 낚시 데이트를 맘껏 즐겨본 적이 14년 동안 단 세 번도 없었지 싶다. 가을바람이 맑게 스치는 강가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낚싯대를 바라보는 스톰으로부터 풋풋한 소년의 향기가 난다.


도구 상자 밑바닥에 누워있는 고무 미끼가 보내는 체념의 눈길을 마주하자 코끝이 싸-해진 이유는, 스톰의 유일한 그나마 너무도 소박해서 안쓰럽기까지 한, 그의 취미 생활을 십여 년간 무정하게 방치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것이다. 오랜 시간 먼지 쌓이고 헝클어진 내용물과 함께 상자에 갇힌 채, 언젠가 문이 열려 다시 시원한 저 강물로 던져지는 순간을 꿈꿔온 색 바랜 고무 미끼처럼, 스톰은 그렇게 묵묵히 나의 손길을 나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물안개는 걷히고, 해는 더 높이 높이 기지개를 켠다. 스톰은 미끼에 묻어있던 모래를 털어 낚싯바늘에 끼운 뒤, 멀리멀리 희망을 실어 힘껏 던진다. 유유히 흐르는 세월의 강물은 이렇다 저렇다 아무 말이 없다. 이 순간 햇볕은 따스하고 공기는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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