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

日日是好日

by Rainsonata


어제 스톰과 나는 Pacific Crest Trail (PCT)라고 불리는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해서 캐나다 국경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트레일의 한 구간을 걷고 있었다. 우리는 사막 산과 푸르른 초원의 경계선에 있었고, 그 풍경은 참으로 근엄하고 웅장했다. 눈앞에는 단아한 사막의 능선과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어가기로 했다. 때마침 높은 능선 위에 자리한 커다란 바위를 발견했기에, 우리는 펄럭이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그곳에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넋을 놓고 경치를 감상하는 나에게 “잠깐, 지금 바람이 멎고 있어”라고 스톰이 말했다. 잠시 후 거센 바람은 자취를 감췄고 이내 평온한 고요가 찾아왔다. 정적을 가르며 두 마리의 검은 새가 분지 위를 날고 있을 뿐, 모든 것이 일시 정지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스톰은 저 멀리 능선을 따라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고 알려줬다. 바로 스톰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등산로가 물결처럼 굽이쳐있었기에 내가 돌아봤을 때는 이미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산에 있으면 누군가 다가오는 듯 보이지만 막상 멀어져 가기도 하고, 반대로 멀어지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눈앞에 서 있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스톰이 가리킨 방향의 능선을 조금 더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우아한 곡선의 산길을 따라 고동색의 후드 모자를 올려 쓴 등산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풀 위로 봉긋 솟은 그의 머리 부분밖에 볼 수 없었지만, 성큼성큼한 걸음걸이는 멀리서도 시원해 보였다. 가까워지는 형체를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스톰과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로를 마주 봤다. “저기 걸어오시는 분 수도복 입고 있는 거 맞지?” “후드티가 아니었어. 맞아. 수도복이야! 허리에 두른 끈 보이지?” “우리가 영화에서 본 중세 수도사와 같은 복장이야.”


깊은 산속에서 마주한 그분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고, 내 손은 반사적으로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으로 향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고요한 사막 그리고 수도사의 뒤편으로 펼쳐진 초원이 마치 한 편의 그림과도 같았다. 그래서 꼭 이 순간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손에 핸드폰이 닿았을 때는 감히 그것을 주머니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숭고한 그의 모습을 허락 없이 촬영하는 것은 바른 행동이 아니라는 일말의 양심이 나의 손을 주머니에 묶어두었기 때문이다.


수도사의 모습이 더욱 가까워지자 난 고민했다. ‘인사를 드리면 실례가 될까?’ ‘내가 말을 걸면 방해가 될지도 몰라.’ 이렇게 혼자 망설이는 사이, 눈처럼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수도사는 이미 우리가 쉬고 있는 바위를 곧 지나치려 하고 있었다. 그때 스톰이 밝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건넸고, 순간 우리 셋은 미소진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는 자신은 수도사이고 현재 순례 중이며 캐나다 국경까지 6개월 안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리고 나이가 많기에 무리해서 걷지 않고, 해가 질 무렵이면 하루를 마감하고 휴식을 취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우리는 그에게 진심으로 응원과 존경의 메시지를 전했고, 그는 배낭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싶더니 “Simplicity, Relationship, Humility”라고 적힌 팔찌를 꺼내 작은 선물이라며 건넸다. 온화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수도사를 바라보는 스톰의 눈망울에는 경이로움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반대 방향으로 길을 떠났다.


수도사와 헤어진 이후 스톰과 나는 말없이 조용히 산길을 걸었다. 우리 주위를 둘러싼 고요와 바람, 그리고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이 좋은 길벗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서로의 가슴에 새겨진 소중한 만남을 되새김질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제일 먼저 수도사의 안전과 그의 순례길에 건강이 함께하길 기원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며, 간소한 삶을 위해서는 꾸준한 성찰과 비움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스톰과 나는 힌두교에서 말하는 삶의 4단계(아쉬라마) 중, ‘임서기(林棲期): 숲에서 사는 기간’의 진입로에 있다. 이 시기는 세속적인 삶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지는 연습을 하기 위해, 자연을 가까이하며 영적인 성숙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한다. 어제의 산행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자연의 참뜻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어느 것도 부여잡지 않으며 어느 것도 밀어내지 않는 마음가짐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라는 배움도 얻었다. 스톰과 내가 함께 찾고 있던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준 드넓은 자연과 아름다운 만남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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