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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Aug 19. 2022

Gratitude Trail

산책

2022년 8월 18일 목요일


우리는 매일 노을 산책을 떠난다. 살고 있는 주택 단지 게이트 오른편에 작은 철문을 열고 나가면, 아담한 골목길이 있고, 그 너머로 바다거북의 등을 닮은 두 개의 산봉우리가 듬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서부터 이 산을 둘러싸고 정상에 오를 수 있는 하이킹 트레일이 있다. 우리는 가을과 겨울에는 산을 관통해서 오르는 가파른 코스를 걷고, 봄과 여름에는 산 밑으로 난 산책로를 걷는다. 그 이유는 날씨가 따뜻해지면 방울뱀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산속의 좁은 오솔길을 걷는다면 독사에게 물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스톰과 나는 출장이나 여행으로 집을 떠나 있는 날들을 제외하고는 빠짐없이 노을 산책을 즐기고 있다. 얼마 전에 스톰에게 산책에 대해 물어봤더니 자신도 하루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고, 그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물론 나도 스톰과 같은 마음이다.


산을 옆에 끼고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넉넉한 산책로를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왼편에 아담한 크기의 호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울창한 갈대숲과 유유히 물을 가르며 헤엄치는 새들의 모습은 그저 바라만 봐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발길을 멈추는 대신 계속해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차분히 걷는다. 그 대신 마을 끝자락까지 내려갔다가 돌아 나오는 길에 호수를 다시 만나면, 그때는 호숫가의 벤치에 앉아 쉬는 시간을 갖는다. 이 호수 주변에는 둘레길도 있는데, 이곳은 조깅하는 사람들이나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산책하는 가족이 주로 사용한다. 그리고 길 입구에는 "Gratitdue Trail"이라고 쓰인 남색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거기로부터 머지않은 곳에 호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앉을 수 있는 벤치 두 개가 놓여 있고, 우리는 등받이가 편안한 나무로 만들어진 벤치에 앉는 걸 좋아한다. 그렇게 우리는 얼마간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드는 광경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때로는 각자 생각에 잠겨 시간을 잊기도 한다. 


나는 벤치에 앉아 주로 감사에 대한 사색에 잠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건강하게 살아 있고, 내가 먹고, 자고, 일할 곳이 있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자연이 있고, 인생의 중반을 넘어 다시 찾은 자유와 자기 다운 삶이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조금이나마 사회와 이웃에 도움이 되고 있고, 진심으로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이 있다. 오래된 추억을 이야기하며 웃고 울 수 있는 친구가 있고, 설렘과 호기심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대화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있다. 아직도 배움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고, 적당하게 쉬어가는 삶을 유지할 수 있으며, 남들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심장이 뛰고 있다. 이 중에서 순수한 나의 노력과 의지로 얻어진 것은 아주 조금이다. 반면 대부분은 좋은 때와 좋은 인연과 좋은 운을 만나서 저절로 이루어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삶에 더욱 감사하다. 


벤치에서 일어나 서늘해진 밤공기를 맞으며 집으로 향하면 우아한 달빛이 좋은 길벗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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