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insonata Jul 28. 2022

랄라의 시선

10.26. 김재규와 박정희

2022년 7월 28일 목요일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새 랄라로부터 짧은 문자와 문서 파일이 들어와 있었다. "아빠를 위하여 쓴 글"이라는 말에 우리는 더더욱 그 내용이 궁금해져서 각자 일하는 공간에서 조용히 파일을 열어보았다. 스톰은 아래층에서 나는 위층에서 따로 읽었지만, 랄라의 글을 읽고 느낀 소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랄라가 수강하고 있는 과목 중에 '현대 한국 정치사의 쟁점(Contemporary History of Korean Politics)'이라는 수업이 있다. 랄라는 한국에서 이 과목을 처음 들은 날, 우리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의실에 갔더니, 아빠 나이 정도의 아빠랑 닮은 얼굴에 아빠 같은 말투를 쓰는 분이 계셨어요. 그런데 그분이 저희 교수님이셨어요. 그래서 수업을 듣는데 마치 아빠가 이 과목을 강의하는 것 같았어요."


랄라가 첨부한 글은 그 수업 과제물로 작성한 듯 보였다. 랄라는 '남산의 부장들(The Man Standing Next, 2020)' 영화를 매개체로 두고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독재정부의 역사적 흐름, 인물 관계의 아이러니, 그리고 자신은 어떤 관점에서 10.26 사태의 해석하고 있는지 정말 훌륭하게 풀어냈다. 랄라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As a Korean whose parents saw the transformation of South Korea and lived through it themselves, I am often told about how terrible Park Chung-Hee truly was. However, I have never heard them praise Kim's decision to murder the dictator. Regardless, I think it is an unpublicized but general opinion that in order for Korean to step away from the dark past of dictatorship and move towards democracy, it was simply an event that occurred that paved the way for the future of South Korea."


랄라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자랐지만,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소중히 여기고,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진 아름다운 영혼이다. 스톰은 랄라에게 한국의 정치와 역사, 그리고 자신이 대학생 시절 경험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아주 어려서부터 꾸준히 들려주었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랄라를 데리고 실리콘밸리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고, 여름 방학에는 랄라와 봉하마을에 내려가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박근혜 탄핵 시기에는 미국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여했고, 우리가 사용한 피켓은 랄라가 학교 과제물로 썼던 포스터를 재활용해서 만든 것이었다.


랄라에게는 아직도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랄라에게는 오래전에 심어진 씨앗이 건강하게 뿌리를 내려 잘 자라고 있음을 증명해 주는 면이 훨씬 더 많다. 부모로서 때를 놓치면 아이의 마음에 심어줄 수 없는 씨앗이 있다. 바로 윤리와 도덕, 배려와 존중, 그리고 자긍심과 인간애이다. 랄라가 보낸 글도 무척 감명 깊었지만, 아빠를 위하여 쓴 글이라는 소개 문자가 스톰에게는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스톰은 랄라의 글을 읽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 스톰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따뜻해졌다. 랄라가 인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충분한 교차 검증을 통해 성숙해질 수 있도록, 우리는 앞으로도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