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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Jul 22. 2022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Grandma & Winnicott

2022년 7월 22일 금요일


할머니께서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씀을 정말 자주 하셨다. 내가 워낙 어려서부터 덤벙거리다 보니 멀리서 손녀딸 걸음걸이만 보셔도 "할미가 뭐라고 했니.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지? 발걸음을 옮길 때도 조심해서 한 발 자국씩 옮기는 연습이 필요한 거야. 너의 서두르는 마음이 걸음걸이 하나를 봐도 알 수 있잖니?" 라며 주의를 주셨다. 조금 더 커서 글씨를 쓸 수 있게 되자 또 같은 말씀을 하셨다. "필체를 보면 어떤 인품을 가진 사람인지 바로 알 수 있지. 그러니 어리다고 그냥 막 쓰지 말고, 처음부터 찬찬히 글씨를 배워서 정갈한 필체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글씨 하나를 봐도 열을 알 수 있거든." 그리고 수다쟁이가 된 십 대의 손녀딸에게 또 같은 당부를 이어가셨다. "말은 천천히 상대방이 알아듣게 또박또박해야 한다. 말씨 하나를 봐도 열을 알 수 있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인지. 그러니 한 마디의 말에도 진심을 담아야 한다." 할머니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공식은 거의 나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에 적용되었다. 식사 태도, 자세, 옷매무새, 사람을 대하는 눈빛, 인사, 돈 쓰는 법, 정말 할머니는 지치지 않고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다. 


할머니의 전매특허였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를 미국에서도 듣게 되리라고 그 누가 알았을까. 대학원 재학 시절 나는 심리학 이론 수업을 듣다가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경험을 했다. 영국의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였던 Donald Winnicott (1896 - 1971)은 우리에게 익숙한 'Good Enough Mother'이라는 표현을 대중화시킨 장본인이다. 바로 그 위니컷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위니컷은 자신이 진료실에서 그날 처음 만난 환자여도,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내담자의 '하나'의 몸짓과 말투가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표현입니다. 뿐만 아니라 위니컷은 엄마가 아이를 주의 깊게 안아주는 행위의 상징성과 안전감을 중요시했고, 그러한 안아주기 환경(holding environment)이야말로 인간의 건강한 성장을 이끄는 핵심 요소라고 주장했어요." 


할머니께서는 십 이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직도 귓가에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고 조곤조곤 말씀하시던 목소리가 생생하다. 내가 인생을 함부로 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할머니의 오래된 가르침을 등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께서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격언을 입으로만 전하신 분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실천하고자 노력하셨다. 할머니의 한결같은 가르침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본보기였으며, 또 손녀를 향한 깊은 애정을 나타내는 귀한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 가르침 덕분에 '하나'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니, 할머니도 위니컷도 내게는 고마운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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