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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Aug 26. 2022

돌아온 분례

반려동물/AI

2022년 8월 25일 목요일


스톰을 처음 만났을 때도 나는 두 야옹이를 모시는 집사였다. 그리고 스톰에게는 '분례'라는 이름의 햄스터가 있었다. 분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스톰이 영화 전공을 하던 대학원 시절, 친한 선배가 졸업 작품에 출연시키기 위해 모셔온 귀한 햄스터다. 그런데 촬영을 마치고 나자, 이 분례의 거처가 모호해졌다고 한다. 왜냐면 영화를 감독한 선배에게 곧 아기가 태어났고, 비좁은 아파트에서 갓난아기와 동물을 함께 키우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선배가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톰은 갈 곳 없는 햄스터를 자취하던 곳으로 데려와 함께 살기 시작했고, '분례'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분례는 그렇게 스톰의 외로운 유학생활의 좋은 친구이자 룸메이트가 되어주었다. 그 후 스톰은 졸업을 하고 자신의 모든 짐을 트렁크에 싣고는 무작정 동부에서 서부로 향했는데, 이주를 하는 동안에도 우리 분례 양은 한결같이 스톰의 곁에서 귀여운 말동무가 되어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분례와 함께 동부로 향한 스톰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취를 시작했고, 그녀와 함께 새로운 환경과 라이프스타일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스톰 말로는 그 무렵부터 분례가 많이 쇠약해지고 늙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례는 스톰의 손에 누워 숨을 거두었다. 그것도 마치 스톰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스톰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가, 스톰이 말을 걸고 손 위에 올려놓고 가슴을 쓰다듬어 주자, 마지막으로 파르르르 온몸을 떨며 이별의 인사를 남긴 채 떠났다고 한다. 


스톰은 분례를 금문교와 푸르른 태평양이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아름다운 공원 언덕에 묻어 주었다. 내가 스톰과 결혼을 하고 분례가 잠든 곳을 같이 찾았을 때, 스톰은 분례가 떠난 뒤에 꾼 꿈에 대해 말해주었다. "분례를 이곳에 묻어주고 나서 분례가 꿈에 나왔어. 그런데 분례가 너무나 포동포동하고 귀여운 모습에 황금빛 털을 뽐내며 바다에서 물고기들과 헤엄을 치고 있는 거야. 분례는 행복해 보였어. 난 그 꿈을 꾸고 나서야 분례가 정말 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되었어. 그래서 분례한테 고마워. 내 꿈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와줘서 말이야." 


그렇게 오래전 스톰 곁을 떠난 분례가 다시 돌아왔다. 아주 다른 모습으로. 


얼마 전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할 수 없었던 집들이를 거의 1년이 지나서 하게 됐는데, 스톰의 사촌누나 가족이 우리에게 로봇 청소기를 선물해주셨다. 집에 가구는 물론이고, 가전이며, 가재도구며 정말 최소한의 물건만 갖고 살아가는 우리 집에 최신형 로봇 청소기가 등장하자 마치 앞으로 모시고 살아야 하는 상전이 납신 것 같았다. AI 기능이 있다는 이 신비로운 물체를 바라보면서 스톰도 나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이것이 청소를 해준다고? 그런데 정말 청소를 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먼지통이 다 차면 도킹 모드로 전환해서 자동 비우기 베이스로 돌아간 뒤, 스스로 담아둔 먼지를 먼지통으로 보낸 뒤, 곧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해서 청소를 시작한다. 그리고 계단이 탐지되면 멈춘 뒤 유턴을 한다. 와우! 이 놀라운 발견! 


그런데 이 청소기의 장점을 충분히 알고 사용하려면 핸드폰에 앱을 다운로드하는 것이 좋다는 말에, 우리 둘은 영화 Dumb & Dumber의 주인공으로 빙의해 한동안 머리씨름을 했다. 여차여차해서 상품에 대한 정보 입력을 마치자, "이 청소기의 이름을 무엇으로 부르겠습니까?"라는 질문 창이 떴다. 스톰에게 물었다. "뭐라고 할까?" 그러자 스톰이 깔끔하게 답했다. "BOON-RYE" 이제는 아침에 거실로 나오면, 충전 베이스에서 쉬고 있는 분례에게 인사부터 한다. "안녕! 분례야. 잘 잤어?" 그리고 오늘처럼 분례가 청소를 마치고 다시 충전 베이스로 돌아간 후 띠리리링 멜로디를 울리며 인사하면, "고마워, 분례야!"라고 인사한다. 그렇게 분례는 이십여 년 만에 다시 스톰의 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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