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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Sep 21. 2022

Mama Bear

랄라의 꿈

2022년 9월 21일 수요일


랄라가 아직도 이야기하는 꿈이 하나 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랄라가 엄마와 랄라 친구 Marissa와 함께 숲에 놀러 갔는데, 커다란 밤색 곰이 갑자기 오른편에서 튀어나왔고, 엄마가 그 곰에게 부딪혀 넘어졌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랄라에게 차 키를 주면서 절대로 엄마를 기다리지 말고 친구랑 최대한 빨리 뛰어가서 차를 타고 달아나라고 말했고, 랄라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뛰어가다가 걱정이 되어 뒤 돌아보니, 곰이 엄마를 잡아먹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했다. 그 순간 엄마가 죽을까 봐 무섭고, 자기만 도망가라고 한 엄마가 야속하기도 하고, 엄마를 진짜로 두고 온 게 너무 미안해서 엉엉 울다가 잠에서 깼다고 했다. 그날 새벽에 우리 방으로 온 랄라를 품에 안고 다독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랄라야, 그건 꿈이었고, 엄마는 여기 있어. 우리 랄라 옆에 이렇게 함께 있잖아. 우리는 이제 안전해."


랄라는 이보다 더 끔찍한 악몽은 없다며, 십 대가 되어서도 가끔씩 나랑 단 둘이 있을 때 몇 번 더 이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면 나는 랄라에게 꿈과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그와 비슷한 상황이 재현된다면, 엄마는 꿈에서처럼 랄라를 지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마마 베어'라는 표현이 있는 거라고도 알려줬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달아나서 주차장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야말로, 엄마가 진심으로 랄라에게 원하는 행동이고, 그런 상황에는 무슨 수를 써도 내 딸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엄마의 간절한 소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자 랄라는 피식 웃으면서 그렇다면 내가 초고속으로 뛰어가서 차를 몰고 온 뒤에 곰을 물리치고 엄마를 구해주겠다고 했다. 


랄라의 꿈이 다시 떠오른 건, 어느 날 Joan Didion의 <The Year of Magical Thinking>을 읽다가 만나게 된  한 장면 때문이었다. 디디온은 자신의 외동딸 Quintana가 UCLA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을 때, 수술 후 딸의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지나간 세월 동안 겪었던 여러 일들을 회상한다. 신생아였던 딸을 입양해 오던 날의 이야기, 변호사로부터 누군가 앞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강한 거부감을 느꼈던 이야기, 그 후로 가족이 동시에 재난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간다. 그러던 중 디디온은 어린 딸과 함께 호노룰루-로스엔젤리스 편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 아주 심하게 흔들렸던 날의 경험을 소개하며 당시의 심정을 떠올린다. 


엄마 디디온은 지금 만약 비행기가 추락해서, 기적적으로 딸과 자신이 살아남아 태평양을 표류하게 될 경우, 자신이 마주하게 될 딜레마에 대해 사뭇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 당시 디디온은 생리 중이었으므로, 바다에 빠지면 자신의 피가 상어를 끌어모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딸의 안전을 위해서는 이 망망대해에 사랑하는 딸을 혼자 내버려 두고, 최대한 빨리 딸로부터 멀리멀리 헤엄쳐 가야 한다는 것이 자신이 직면한 어려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스스로 "나는 과연 할 수 있을까?" 하고 묻는다. 뒤이어 "모든 부모는 이런 감정을 느껴봤을까?" 하는 질문도 함께 던진다. 그리고 디디온은 딸에게 속삭이듯 이렇게 글을 마무리 짓는다. "You're safe. I'm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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