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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Oct 13. 2022

I and Thou

Martin Buber

2022년 10월 13일 목요일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대학원 시절에 깊이 깨달았다. 수많은 일들이 중첩되면서 이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지금 내 책상에 놓여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종교철학자 Martin Buber (1878 - 1965)의 <I and Thou>를 통해서였다.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게 되면 진짜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의 심리를 공부하겠다고 이 학문을 선택한 사람이 어떻게 책을 멀리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려서부터 책을 즐겨 읽었던 나는 독서가 취미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랄라를 키우는 동안 학업을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에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도 나의 독서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원 수업 첫날부터 난 뒤통수를 시원하게 맞았다.


일단 교과서가 두껍다. 그리고 모르는 영어 단어가 아주 아주 많다. 지성과 상상력의 조합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의 단어가 아니라, 정말 태어나서 처음 보는 단어 투성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계속 나온다. 끝도 없이 나온다. 심지어 어떤 이름은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조차 몰랐다. 심리학에 대한 역사와 이론을 배운 뒤, DSM: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을 만났을 때에는, '그래 이 공부를 하기 위해 그 많은 책들을 지금까지 읽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DSM이라는 산 봉우리를 넘자마자, 이번에는 Psychopharmacology (정신약리학)이 기다리고 있었다. 와우! 정말 와우! 였다. 아름다운 교수님의 수업이었는데, 그분의 고운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긴 단어가 국수 가락처럼 술술 계속해서 나오는 모습이 마치 만화의 한 장면 같았다. 지금도 내담자를 만날 때면 정신약리학 교과서를 옆에 챙겨둔다. 약리학과 관련된 명칭을 섣불리 발음해보고 싶지도 않고, 그럴 엄두조차 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렇게 두껍고 어려운 책들만 계속 보던 시기에, 한 교수님께서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필독도서로 정하셔서 모두가 구입해야 했다. 인터넷에서 주문한 이 책이 배달되어 왔을 때 나는 몹시 기뻤다. 왜냐면 내가 대학원에 들어와 읽은 책 중에 가장 얇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디어 나에게도 좀 쉬어 가라는 신의 가호가 내려졌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Mundus vult decipi: the world wants to be deceived." 그 후, 내 뇌량의 신경섬유다발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Walter Kaufmann (1921 - 1980)의 독특한 문체가 무려 40 페이지나 이어졌다. 정교하게 짜인 미로와 같은 프롤로그를 지나 만나게 된 부버의 글은 오히려 간결했다. 그래서 바로 안도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세 번 읽어야 했다. 총 182 x 3 = 536 페이지를 읽었다. 짧은 글이라고 반드시 읽기 쉬운 건 아니라는 각성의 시간이었다. 


지금도 <I and Thou> 표지를 보면 마르틴 부버가 나를 바라보며 경거망동(輕擧妄動)을 조심하라고 그윽한 눈빛으로 주의를 주는 것 같아 가슴이 뜨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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