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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Oct 31. 2023

랄라는 스물한 살

딸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랄라에게,


너의 스물한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우리 랄라가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술을 사고 마실 수 있는 스물한 살이 되는구나. 그렇다면 지금까지 사용했던 세로의 청소년 운전면허증도 이번 생일과 함께 가로의 일반 운전면허증으로 바뀌겠구나. "스물한 살의 생일을 맞이하는 랄라의 마음은 어떠니?"라는 질문에 너는 스물한 살은 뭔가 특별한 나이인 것 같지만 아직은 그 나이가 실감 나지 않는다고 했어. 그러면서 이제 정말 어른이 되는 것 같아서 조금 겁이 나면서도,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도 된다고 했지. 또 이런 말도 덧붙였어. 이제 엄마 아빠로부터 학자금 원조가 끝날 텐데 당장 대학을 졸업하면 어떻게 먹고살지 앞날이 걱정된다고 말이야. 랄라의 복잡한 심경을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구나. 


얼마 전 랄라가 보내준 가로수가 잎을 떨구는 사진과 "Leaves are falling"이라고 적힌 문자 잘 받았단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는 내내 엄마는 랄라의 아기 때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미소가 지어졌어. 갓난아기 때부터 자연에 관심이 많았던 랄라는 유모차 안에서도 주변을 둘러보다 무언가를 발견하면 엄마에게 눈짓 손짓을 하며 함께 보자고 온몸으로 말을 걸어왔거든. 그런 랄라의 모습이 엄마 눈에는 참 예쁘고 사랑스러웠단다. 그리고 랄라가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손바닥에 꼬물꼬물 담아 온 조약돌, 조개껍데기, 꽃잎, 나뭇잎, 나뭇가지, 도토리들을 보여줄 때면, 우리 아기에게 그만큼 많은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있다는 증표처럼 여겨져서 기뻤어.


랄라가 조금 더 자라서 네 살이 되었을 때는 신기한 일을 함께 경험하기도 했단다. 그 무렵의 랄라는 비가 오는 날이면 진분홍색 바탕에 커다란 무당벌레가 그려진 비옷을 입고 산책하는 걸 좋아했었어. 그날도 보슬비가 내리길래 여느 때처럼 랄라는 무당벌레 비옷을 입고 엄마는 우산을 쓰고 함께 산책을 나갔지. 그런데 우리 집을 나오자마자 어마어마한 숫자의 달팽이들을 만난 거야. 그런데 숫자도 숫자지만 달팽이의 크기도 정말 각양각색이었어. 우리 둘 다 그 광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랄라가 그 자리에 멈춰 서더니 엄마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했어. "엄마, 고무장화가 달팽이를 밟으면 안 되니까 아주 천천히 조심히 걸어야 해요." 그리고 랄라는 사뭇 진지한 태도로 끝없는 달팽이의 행군을 모두 찬찬히 살피며 따라 걸었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엄마는 랄라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잘 집중하고, 기다리고, 배려할 수 있는 아이라는 걸 알았어.


랄라야,


앞으로도 지금껏 그래왔듯이 자연의 품 안에서 살아가길 바란다. 너의 마음이 가는 것에 눈길을 주는 여유를 갖길 바라며,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해 오면 온정으로 답하길 바란다. 그리고 랄라가 살아가면서 느낀 감정이나 생각을 소중한 사람들과 편안하게 나누며 살았으면 해. 엄마 아빠가 랄라를 귀하게 여겨온 것처럼, 우리 랄라도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 너의 개성과 정서를 스스로 존중하고, 건강한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기 돌봄을 잊지 말기 바란다. 랄라는 이미 고유한 인생관을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앞으로 더 배우고 실수하고 깨닫고 뉘우치면서 꾸준히 성장해 나가리라 믿는다. 가끔 랄라가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가만히 지켜보는 엄마를 보고 투덜거릴 때가 있는데, 그건 엄마의 잦은 간섭이나 섣부른 개입은 오히려 너에게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스물한 살의 랄라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늘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과 너의 건강과 앞날을 축복해 주는 것이란다. 


친구들과 계획한 생일 여행 잘 다녀오고, 아름다운 가을을 만끽하길 바란다. 랄라야, 많이 많이 사랑해!


2023년 10월 30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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