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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Mar 06. 2024

다음날

후회

2024년 3월 5일 화요일


이곳은 요즘 하늘에도 들판에도 가로수에도 봄이 피어나고 있다. 집 근처 호숫가에는 백로가 노닐고, 귀여운 강아지 친구들도 산책을 즐긴다. 가끔 코요테를 만날 때도 있지만 생각만큼 공격적이 않아서 사람과 마주치면 먼저 숲 속으로 몸을 피한다. 예년에 비해 강우량이 많았던 덕에 나무들도 쑥쑥 잘 자라고 있다. 엘리와 루피도 이층 발코니에서 햇살을 즐기고, 나 또한 저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날에는 Pondo of the House of Sunflower를 온 집안에 크게 틀어놓고 열심히 따라 부르고 싶어 진다. 한편 봄이 오면 돌아가신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죽순처럼 움튼다. 그래서 나에게 봄은 따사로움과 대숲의 서늘한 바람이 공존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어제 핸드폰에 저장된 앱을 정리하다가 뜻밖의 글 하나를 만났다. 총 136편의 글이 저장되어 있었는데 아래 적힌 글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기록은 없었다.

                                             

<다음날>


할머니께서 여름 이불 하나를 부탁하셨다.

동네 시장에서 얇고 아담한 크기의 이불을 골라 담으며

'지금 할머니께 갖다 드릴까?' 하고 망설였다.


오늘은 이미 선약이 있으니

'내일 갖다 드려도 되겠지?'

나의 바쁜 하루는 빨리 저물었다.


다음날 할머니께 문안 전화를 드렸고

알맞은 여름 이불을 사놨으니

오늘 저녁에 갖다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날 할머니는 집이 아니라

영안실에서 저녁을 맞이하셨다.


미루지 마라.

다음날로 미루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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