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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Nov 11. 2023

산을 오르며

도종환

2023년 11월 10일 금요일


올해 시작과 함께 허리-엉덩이-다리로 이어지는 통증이 나날이 심해지나 싶더니 봄에 이르러서는 그 고통이 극에 달해 결국 병원을 찾았다. 진료와 검사를 마친 후 전해받은 진단명은 '요방형근 근막통 증후군'이었다. 영어로 이 부위를 'Quadratus Lumborum'라고 부른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여하튼 이곳의 고장으로 자는 동안 침대에서 돌아눕기가 어려워졌고, 기침을 하면 칼로 베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특히 아침부터 계속되는 요통이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하는 나에게는 치명적이었으므로, 일단 주치의가 권한 모든 치료 요법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바로 약물 치료와 물리치료를 시작했고, 집에서는 아침마다 요방형근 스트레칭과 허리 강화 운동 루틴을 하루도 빠짐없이 실천했다. 나는 작지만 건강한 습관을 꾸준히 반복하면 어떤 위대한 결실을 맺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믿음에 따라 매일 아침 30분씩 허리 건강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 결과 아팠던 부위가 차차 회복되었고, 지난 주말에는 8개월 만에 다시 하이킹에 도전할 수 있었다. 


우리가 찾은 트레일은 캘리포니아 남부에 위치해 있어서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코스는 아니었지만, 그 대신 맑은 공기와 넉넉한 숲, 그리고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청량한 산행이었다. 정상에 올라 스톰과 나는 푸르른 호수를 바라보며 나무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 번 크게 아파보면 소소한 것들이 지닌 아름다움과 빛나는 순간을 쉽게 알아차리게 된다.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평소에 당연시했던 많은 것들 중에 어느 하나도 당연한 것은 없음을 배우는 기회도 얻는다. 또한 햇살 아래 놓인 눈사람처럼 그동안의 오만이 서서히 녹아 없어지고, 주위의 작은 도움과 배려에도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자신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너와 나의 경계선이 옅어지고,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마음 그릇이 넓고 깊어진다.




                                                                 <산을 오르며>                              

                                                                                                                                   도종환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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