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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Mar 20. 2024

무엇을 짊어지고 사는가

Maira Kalman

2024년 3월 19일 화요일


스톰과 함께 산책을 하려고 집을 나서면 연보라 색으로 언덕을 물들인 캘리포니아 라일락이 뿜어내는 꽃향기로 가득하다. 덕분에 우리 동네 사람들은 무료로 향기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이 년에 걸쳐 캘리포니아 남부에 충분한 비가 내려줬기에 작년에는 기나긴 가뭄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올해는 이곳저곳에서 풍성한 꽃잔치를 벌일 수 있게 되었다. 호숫가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스톰과 나는 은퇴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적절하게 덜어내는 삶을 실천하자고 서로를 격려한다. 미니멀리즘을 십 년 넘게 실천해 왔으니 물건의 소유에 대한 부분은 이미 많이 덜어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불필요한 상념과 과도한 책임감은 아직도 덜어낼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결혼을 하고 랄라를 낳고 살아오면서 스톰과 나는 각자의 역할과 의무에 충실했다. 김초혜 작가의 말씀처럼 의무는 인간의 근본이고,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며, 의무가 줄기라면 도덕은 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의무에 너무 얽매여서 피는 꽃을 감상할 여유를 잃을 수도 있다. 오십 대를 살고 있는 우리 부부는 줄기를 살찌우는데 전념하기보다 그 줄기 끝에 앉은 꽃망울이 눈을 뜨고, 피고, 지는 순간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어졌다. 그래서 앞으로는 자연의 법칙과 양심을 거스르지 않는 정도의 성실함으로 노년의 삶을 준비해 나가려고 한다. 정성스럽고 참된 것(성실/誠實)과 마음이 뜨거워 질만큼 힘쓰는 것(열심/熱心)에는 차이가 있다.


무엇을 짊어지고 사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직도 부둥켜안고 있는 이 짐꾸러기도 언젠가는 우리의 소박한 살림살이를 닮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Maira Kalman (1949 -)의 글을 읽는다.


What do women hold?


The home and the family.

And the children and the food.
The friendships.
The work.
The work of the world.
And the work of being human.
The memories.
And the troubles
and the sorrows
and the triumphs.
And the love.


Men do as well, but not
quite in the sam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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