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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Sep 21. 2024

와르르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2024년 9월 20일 금요일


오늘 늦게나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열흘 넘게 스톰은 심각한 허리 통증으로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없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냈다. 비슷한 시기에 랄라는 인후통과 마른기침으로 고생했고, 그 뒤로는 내가 감기 몸살에 걸렸다. 우리가 함께 살면서 세 명이 동시에 아팠던 적은 거의 없었기에, 이번 일을 통해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일상생활에 얼마나 큰 어려움이 따르는지 깨닫게 되었다. 셋 중 마지막으로 아프기 시작한 나는 자연스럽게 일과 가사, 간병을 모두 맡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올해 추석은 매우 조용히 지나갔다. 달구경도 못 했고, 송편도 못 먹었으며, 셋이서 간단한 식사와 약만 먹었다. 보통 추석이면 왕만두를 빚어 이웃들과 나눠 먹는데, 장을 보지 못해 재료도 없었고, 만두소를 만들 힘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역할 분담과 루틴을 중시하고 즐긴다. 이 두 요소는 생활의 균형과 안정감을 가져다주고, 삶의 질을 유지하며 원활한 소통을 돕는다. 그러나 이번 돌발 상황으로 인해 우리 집의 깔끔한 생활 패턴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스톰과 랄라가 아프기 시작하고 3~4일 동안은 내가 긴급 대응 모드로 둘의 몸 상태를 살피며 아내/엄마 역할을 잘 해내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 내 몸살이 시작되면서, 집안 꼴은 더욱 말이 아니게 되었다. 주말마다 하던 대청소는 인력과 에너지 부족으로 하지 못했고, 빨래와 설거지도 제때 하지 못해 엇박자가 나면서 주방과 거실은 정리와 거리가 멀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이 시기에 우리 동네에 어마어마한 개미 군단이 나타나 개미 퇴치에 진땀을 뺐다.


이제 개미들은 자연으로 돌아갔고, 동네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스톰도 걷고 앉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랄라도 어제부터 약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회복되었다. 병치레의 마지막 주자였던 나는 여전히 약을 먹고 있지만,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명상과 운동을 하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내담자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내 몫의 집안일을 하며, 틈틈이 소소한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삶에 감사한다. 일요일에는 추석 무렵에 늘 그랬듯이 왕만두를 빚어 가까운 이웃들과 모임을 가질 계획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집 냉장고에는 다양한 식재료가 가득하고, 과일 바구니에는 윤기 나는 석류가 곱게 담겨 있다. 유칼립투스 향초와 따뜻한 차는 글쓰기의 벗이 되어 내 곁을 지켜주고 있으며, 스톰과 랄라는 각자의 방에서 건강한 몸으로 평온한 금요일 밤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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